[역사로 내리는 커피] ‘뽀이’ ‘여뽀이’ 이야기



영어 ‘boy’의 사전적 의미는 ‘소년, 어린 남자아이’다. 그런데 서양 문명이 물밀듯이 들어오던 20세기 초반 어느 시점부터 일본과 우리나라에서는 ‘보이’가 된소리 ‘뽀이’로 불리면서 식당이나 호텔 등에서 손님을 접대하는 남성을 의미하기 시작했다. 종업원을 부를 때 큰 소리로 “뽀~이”라고 했다. 이런 호칭은 해방 이후 1970년대까지도 널리 사용됐다. 요즘 음식점이나 카페 등에서 종업원을 부를 때 많이 사용하는 ‘이모’ ‘언니’ ‘아가씨’ ‘아줌마’ ‘저기요’ ‘여기요’의 원조는 ‘뽀이’였다.

이런 의미의 ‘뽀이’가 처음 사용된 업소의 하나가 바로 20세기 초기 문을 연 끽다점이었다. 다방의 원조였다. 1909년 서울 남대문역에 처음 문을 열었던 끽다점에서 일하는 남자 종업원이 아마도 ‘뽀이’로 불렸을 것이다. 지금의 서울역 역할을 했던 당시 남대문역 끽다점은 샌드위치라는 서양식 음식과 커피를 팔았기에 ‘뽀이’는 어울리는 호칭이었다. 아직은 여성이 이런 공개적인 장소에서 접대 업무를 하는 것이 용납되지 않던 시절이었다.

신문에 ‘뽀이’라는 단어가 처음 보인 것이 1914년 5월 27일자 매일신보였다. 제목은 ‘금발미인 참화-뽀이가 주인 부인을 참살’이라는 제목의 해외토픽이었다. 5일간 같은 제목으로 연재됐다. ‘뽀이’라는 용어가 설명 없이 자연스럽게 쓰인 것을 보면 이미 신문 독자들이 이해하는 단어였을 것이다.

이런 시절은 오래가지 않았다. 근대화된 여성들이 남성 업무 영역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새로운 호칭이 등장했다. 바로 “여뽀이”였다. ‘뽀이’인데 남성이 아니라 여성이라는 의미였다. 남성들의 차지였던 근대적인 직종에 여성이 진입하자 그 직책 앞에 ‘여’라는 접두어를 붙여 구분하기 시작한 것이다. 남성 중심 사회가 만들어낸 희한한 호칭이며 이후 생긴 여교사, 여검사, 여순경, 여행원, 여군 등은 성 역할 구분론에 바탕을 둔 직업 호칭의 시작이었다.

1918년 10월 1일 대구역 신축과 함께 역사 안에 문을 연 끽다점에서 여자를 급사로 채용했다는 기사가 ‘부산일보’(1918년 10월 6일자)에 게재됐다. 기사 제목은 ‘대구 끽다점 개업’이었고, 부제가 ‘여뽀이의 애교’였다. 뽀이에도 여러 종류가 있었다. 요리점뽀이 이외에도 기선뽀이, 열차뽀이, 호텔뽀이 등이 있었다. ‘뽀이범죄’라는 단어도 사용됐다. 뽀이든 여뽀이든 이들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부정적이었다. ‘여뽀이’는 1920년대 중반 ‘웨이트리스’로 진화했고, 해방 이후에는 ‘레지’로 옮겨갔다.

백년이 지난 21세기 초에 우리는 정치인들에 의해 촉발된 성 정체성 논쟁을 다시 겪고 있다. 부끄러운 일이다. 고대 사회의 어떤 민족은 사람을 남성과 여성이라고 하는 두 성으로 구분하지 않고 열여섯 가지 성으로 구분했다고 한다. 한 가지 엄격한 기준으로 사람을 구분하고자 하는 욕망, 인간이 지닌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고 한 가지 기준으로 줄 세우려는 욕망은 경계해야 할 차별과 폭력의 출발점이다. 특히 교육에서는.

이길상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교육학과) leegs@ak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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