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경식 기자의 신앙적 생각] 창조질서 외면한 자유·평등은 ‘무분별한 가짜’라는 것 명심하길

국회에서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움직임이 본격화하면서 찬반 논란이 커지고 있다. 한 시민단체가 차금법 제정을 반대하며 시위하고 있다. 국민일보DB




언제 안 시끄러웠던 적이 있었겠냐만은, 우리 사회는 이번엔 포괄적 차별금지법(차금법) 제정 움직임으로 시끄럽다. 차금법이란 합리적 이유 없이 성적지향성, 성별, 장애, 인종, 피부색, 언어 등으로 고용, 교육기관의 교육 및 직업훈련 등에서 차별받지 않도록 하는 내용의 법률이다. 현재 국회 다수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차금법 제정에 비교적 호의적인 만큼 분위기가 무르익으면 언제든 차금법이 입법화할 가능성이 크다. 최근 민주당 지도부의 한 인사는 “15년 전 차금법 논의가 시작됐지만 부끄럽게도 그동안 국회는 법 제정에 한 발자국도 다가서지 못했다”며 “차금법 제정 논의를 힘차게 시작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얼핏 보면 차금법은 차별과 혐오를 없애 우리 사회를 보다 진일보한 사회로 만들어 줄 수 있는 좋은 법으로 보인다. 그러나 문제는 ‘성적지향성’ 부분이다. 이는 사실상 동성애, 동성혼 합법화 여부와 관련한 논란으로 발전한다. 자연스레 기독교적 가치관을 심각히 위협하는 요인이 된다. 차금법 제정을 옹호하는 사람들의 주장 기저에는 인간의 자유와 평등이란 가치가 내재돼 있다. 이러한 가치들은 역사적으로 근대화의 밑바탕이 된 좋은 가치이지만, 이것이 지나치거나 잘못된 방향을 지향한다면 오히려 역효과를 낼 수도 있다. 기독교 신앙을 갖고 있는 필자의 입장에선 차금법에서 옹호하는 성적지향성의 자유와 평등이 자칫 도덕적 타락과 사회적 혼란이라는 역효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엄연한 창조질서를 외면한 자유와 평등은 진정한 것이 아닌 무분별한 가짜로 보여지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필자는 자유와 평등도 어느 정도 신앙에 근거한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생각을 이야기할 때 항상 좋은 사례로 드는 인물이 있다. 바로 미국의 제40대 대통령인 로널드 레이건이다. 우리는 보통 레이건을 이야기할 때 소련을 ‘악마의 제국’으로,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역사의 잿더미’로 보내버려야 한다고 외치는 강경한 반공정치인 또는 냉전을 종식하고 글로벌 시장경제를 선도한 정치인으로만 기억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에 앞서 레이건은 훌륭한 보수주의적 신앙인이었다. 레이건은 자유도 신앙을 필요로 하고, 신앙으로부터 분리될 수 없는 것이라고 여겼다. 신앙은 자유로운 사람들의 영혼에 은총을 가져와 그 사람들을 이기적 자유가 아닌 이타적으로 만들고 섬기게 한다고 생각했다. 이어 신앙에 근거하지 않은 자유는 방종으로 이어지고 선이 아닌 악을 초래한다고 봤다.

레이건이 대통령에 취임할 당시 미국은 전 사회적으로 방탕한 자유주의적 문화가 만연하고 있을 때로 평가를 받는다. 미국의 근간이 되는 기독교적 가치관이 다방면에서 위협을 받았던 시기로도 평가된다. 이런 상황 가운데 레이건은 자칫 ‘반동’으로도 보여질 수 있는 노선을 일관되게 추구한다. 바로 신앙에 근거한 보수주의적 노선이다. 미국이란 국가는 대통령 한 사람이 추구하는 노선이 전 사회 분위기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이에 따라 사회 도처에서 적잖은 반발이 있었지만, 레이건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이 추구하는 바를 끝까지 밀고 나갔다. 그 결과 국가의 기독교적 가치관 및 기강이 어느 정도 바로잡힐 수 있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현재의 우리나라 상황이 당시 미국의 상황과 오버랩되는 측면이 있다고 봤을 때, 앞으로 국가 지도자들의 역할과 결정이 매우 중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포퓰리즘적인 여론 따위에 휩쓸리는 지도자가 아닌 레이건처럼 옳고 그름을 명확히 분별할 줄 아는 뚜렷한 신념과 신앙을 가진 지도자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해 보인다. 이로 인해 무분별한 자유와 평등이 아닌 신앙에 근거한 자유와 평등이 이 사회에 오롯이 정착되는 역사가 임하길 소망해 본다.

최경식 기자 kschoi@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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