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로 내리는 커피] 일본보다 식민지 조선에 먼저 생긴 것



2000년 동안 문화는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흘러갔다. 그러던 것이 조금씩 흐트러지기 시작하더니 개화기에 이르러서는 일본을 통한 서구 문화 유입이 봇물을 이뤘다. 커피문화도 예외는 아니었다. 일본에 끽다점이 생기면 조선에도, 일본에 카페가 생기면 조선에도 생겼다. 일본 카페가 에로서비스니 정조서비스니 하는 식으로 퇴폐화의 길을 가면 조선 카페도 그 길을 따랐다.

그런데 조선에서 먼저 시작된 것도 있었다. 조선에서 생긴 후 일본으로 흘러간 새로운 커피문화는 바로 순끽다점이었다. 다방의 원조다. 1920년대 후반 들어 심해진 카페의 퇴폐화에 맞선 일본 권력의 방식은 엄한 단속이었다. 경찰이나 공무원을 보내 조사해서 벌금을 물리고, 조금 심하면 영업정지나 폐업을 시키고, 저항하면 주인을 잡아 가두는 단순 무식한 방식이었다. 공정과 정의를 가장한 법으로 다스리는 겁주기 정책이었다. 표면적으로는 성과가 나타나지만 성공할 리 없었다. 커피나 음식보다 서비스를 앞세우는 ‘악카페’는 늘어만 갔고, 미풍양속의 오염을 염려하는 목소리는 오히려 커져만 갔다.

이런 억압적 정책과는 다른 방식이 등장했다. 주류를 판매하지 않고, 음식과 커피만을 취급하고, 미모의 웨이트리스를 내세우지 않는 새로운 끽다점이 등장한 것이다. 1927년 12월 18일자 조선신문(일본어)의 ‘순끽다점(純喫茶店)’이란 제목의 기사에 등장한 ‘후타미테루무’가 그 시작이었다. 본정3정목, 지금의 충무로 3가에 등장한 순끽다점이다. 커피와 양과자 세트 메뉴를 내세운 것이 특징이었다.

이어 1928년 8월 1일에 본정2정목 소재 끽다점 ‘금강산’은 저렴한 가격, 순민중적 분위기, 그리고 주류를 팔지 않는 ‘거리의 안식처’라는 광고를 통해 영업을 시작했다. 1930년대에 우후죽순처럼 등장해 경성의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게 되는 조선 다방문화의 시작이었다. 몇 년 후 일본에서 1930년대 초반 경제 대공황으로 위축된 소비문화를 반영해 출발하게 되는 ‘쥰킷샤(純喫茶)’가 조선에 먼저 등장한 것이다. 조선에서는 퇴폐적 카페문화에 대한 반발로 시작된 반면 일본에서는 위축된 소비시장에 부응해 나타난 것이 차이라면 차이였다.

1920년대는 일본이 3·1운동 영향을 받아 무단통치를 포기하고 문화통치를 내걸었던 시절이었다. 일본인의 유전적 우월성, 문화적 고차원성을 전제로 한 오만한 통치였다. 문화는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것이 당연하고, 이에 저항하는 것은 무식한 일이라고 주장했던 경성제국대학교 다카하시 도루의 식민사관이 널리 퍼져 있던 시절에 순끽다점 문화는 조선에서 시작해 일본 열도로 흘러갔다.

문화에 계급이 없다는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상식이다. BTS 음악이 세계인의 귀를 사로잡고 있는 지금도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그것이 우리 문화의 우월성을 드러내는 현상이 아니라는 것, 그것은 그들 음악인의 피땀 어린 노력의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문화에 정치를, 국격을, 민족성을 섞는 것이야말로 야만이고 무식이다.

이길상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교육학과) coffeehistorytv@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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