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로 내리는 커피] 다방은 ‘다방’ 그것이다



청년들의 꿈이 카페 창업인 시대, 연예인의 카페 창업이 논쟁이 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연예인이 정치를 하고, 정치인이 예능프로에 나오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데, 연예인의 카페 창업을 시비 대상으로 삼는 심리는 산패한 커피콩보다 더 역겹다. 카페는 창업에 경계가 있는 무엇도, 어떤 형식이 주어진 그 무엇도 아니다. 창업 주체도, 운영 방식도, 소비 형태도 자유로운 ‘교양인의 음료’ 커피를 느끼는 곳이다.

1930년대 초반 경제 대공황 직후 식민지 조선에선 때아닌 다방 창업 열풍이 불었다. 조선의 모뽀(모던 뽀이)와 모껄(모던 껄)들이 앞장섰던 다방 창업 열풍이었다. 1920년대 후반 일본인들이 주도했던 카페 전성시대는 장기화되는 불황과 전쟁의 암운 속에 서서히 저물어갔고, 그 자리를 이어받은 것은 커피만을 파는 조선식 다방이었다. 도시의 모뽀, 모껄들은 너도나도 다방 창업에 나섰다. 김수곤도 그런 모뽀였다. 1935년 일본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화가 지망생 김수곤은 화가의 길을 버리고 다방 창업을 꿈꾸며 예비 장인에게 지원을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 그는 시인지 유서인지 모를 이런 글을 남기고 세상과 스스로 이별했다. “고요한 끽다점, 술 없는 끽다점, 석양의 끽다점, 아! 쓸쓸한 이내 마음이여.”

청년 김수곤에게 다방은 낭만 가득한 미래의 일터이자 안식처였다. 반면 조선중앙일보에 수필 ‘다방: 어떤 문학청년의 일기’를 연재한 이약슬은 다방을 18세기 후반 혁명을 꿈꾸던 프랑스 청년들의 해방구에 비유했다. 그는 조선 청년들에게 “조선의 현실을 한잔의 커피에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비춰보라”고 절규했다. 소설가 홍효민은 다방의 맛을 모르면 비문명이라고 표현했다. 그에게 술과 에로티즘이 넘치는 카페는 ‘비문명’이었고, 깨끗한 심리적 희열을 느끼게 하는 다방은 ‘문명’이었다. 식민지 조선 시단의 3대 천재 중 한 명으로 불리던 이용악은 다방을 “버틸 곳이 마땅치 않은 청춘들의 휴식처였고, 미래가 불투명한 여인들이 미소로 하소연하는 곳이었으며, 기약 없는 인생을 반성해 보는 도시의 항구”로 묘사했다.

1930년대 조선의 다방은 당시 청년들의 복잡한 심리를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그것은 식민지 조선 사회를 바라보던 청년들의 정신세계만큼이나 복잡하고 다양했다. 매일신보 1937년 1월 1일자에는 이런 명문이 실렸다. “다방은 차를 먹기 위한 곳이라며는 그것은 다방을 잘못 이해한 것이다. 차를 사랑함으로써 다방을 찾는다는 것은 잘못이다. 다방, 그것을 사랑하여야 된다. 그것이란 분절할 수도, 설명할 수도, 이것이라 뚜렷이 지적할 수도 없는 것이다. 나 자신이 그 분위기 안에 동화되어서 감각하는 삼매경이다. … 가벼운 애수, 흥분, 그러한 다각한 감정이 봄날 아지랑이같이 혼합한 공기가 다방의 매력이다.… 다방은 ‘다방’ 그것이다.”

우리나라의 카페가 이제 10만개를 넘어서고 있다. 우리나라의 카페는 무엇일까? 분절할 수도, 설명할 수도, 뚜렷이 지적할 수도 없는, 이 시대 한국의 ‘카페’ 그것이다. 카페 창업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태도는 부끄러운 비문명이다. 야만보다 못하다.

이길상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육학과 교수 leegs@ak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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