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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태근 목사의 묵상 일침] 찬송, 사랑에서 나오는 신뢰



신약성경 에베소서 1장에서 사도 바울은 200여개의 단어로 된 한 문장의 긴 송영을 통해 하나님 뜻의 비밀과 그분의 경륜이 무엇인지 밝힌다. 바울은 하나님의 경륜이 그리스도에 의해 그 정점에 도달했다고 말한다. 경륜이란 주권을 가지고 다스리는 것을 의미한다. 즉, 하나님께서 세상 역사와 우주 만물을 운영하시는 최종 목표가 그리스도께로 향해 있다는 것이다. 바울은 이를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기 위함이라고 표현한다.

바울이 사용한 ‘통일’이라는 말은 ‘머리’라는 단어를 그 뿌리로 하는데, 하나로 요약돼 모아진다는 의미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만물이 통일된다는 것은 머리이신 그리스도 아래 모든 만물이 종속되는 것을 가리킨다. 하늘과 땅의 모든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지배를 받도록 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운영하시는 역사의 최종 목적지라는 것이다. 이는 기독교가 가지고 있는 매우 독특한 역사관이고 세계관이다.

여기서 한 가지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사실은 예수 그리스도를 정점으로 하는 하나님의 우주적 경영이 또한 성도들을 향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 머리털까지 세시는 아버지가 되셔서 세상 끝날까지 우리를 보호하시고 인도하신다. 성령을 우리에게 주셔서,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상속자로 세우신다는 약속이 반드시 이뤄진다는 것을 보증하셨다. 자녀 삼기에 결코 적합하지 않은 죄인들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상속자의 반열에 서게 하셨다는 놀라운 사실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기에 단지 믿을 뿐이다.

당연히 들 수밖에 없는 질문은 이것이다. ‘왜 죄인들을 향해 이렇게까지 은혜를 베푸시는가.’ 바울의 대답은 간단하다. 이 모든 것을 통해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찬송하기 원하신다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찬송이 어떤 관계 안에서 주어지고 있는지 주목해야 한다. 바로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다. 아버지이신 하나님은 결코 억지로 찬양받으실 수 없다. 하나님은 마음에도 없는 맹목적 칭송을 원하시지 않는다.

생각해 보라. 자녀가 부모 마음을 조금이라도 알고 헤아릴 때 부모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부모의 수고를 알고 감사할 줄 아는 태도를 가질 때 부모는 만족감을 느낀다. 주어진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고 감사할 때, 부모에게 그만한 기쁨이 없다. “아빠 고마워” “엄마 사랑해.” 그 한 마디가 부모에겐 천하를 얻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도 마찬가지다. 찬송이란 우리를 향한 아버지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인정하고 감사하는 것이다. 미국 미시오신학교 스티븐 테일러 교수는 ‘고난과 하나님의 선교’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러므로 성도가 고난받을 때에 ‘주신 이도 주님이시요 거두신 이도 주님이시니 주님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 것이다’라고 고백한다면 사탄의 정사와 권세들은 ‘아냐, 이럴 순 없어!’라며 패배에 울부짖을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선교가 옳았다는 사실이 입증될 것이다. 암으로 쇠약해져 가는 그리스도인, 비극적 사고로 자녀를 잃은 성도에게도 이것은 사실이다. 평범한 그리스도인이 이 땅에서 경험하는 어떠한 고난 가운데서도 삼위 하나님을 향한 사랑으로 반응한다면 그 자체로 하나님의 선교는 승리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찬송 곧, 사랑에서 나오는 신뢰를 기대하신다. 역설적이게도 찬송은 하나님을 향한 신뢰가 무너질 것만 같은 고난의 현장에서 가장 진실 되게 울려 퍼질 수 있다. 우리는 그 찬송을 부르도록 이 땅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선택되어 부름을 받았다. 찬송은 하나님을 증언하는 입술의 열매다. 우리 앞에 놓인 상황이 어떠하든지 하나님을 찬송하므로 하나님을 증언하길 소원한다.

(삼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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