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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운성 목사의 하루 묵상] 새로운 세대를 갈망하며



모든 사회와 역사는 흥함과 쇠함의 반복을 겪습니다. 흥하기만 하거나 쇠하기만 하는 일은 없습니다. 흥하다가 쇠하고, 쇠하다가 흥합니다. 가정도 그렇지요. 윗대에 훌륭한 인물을 배출해 명문 가정이 됐더라도 후대에 쇠락하기도 하고, 다시 걸출한 인물이 가문을 세우기도 합니다. 나라도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사회가 가는 방향과 역사의 흐름을 주시하는 사람이라면 이런 데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어떻다고 여기십니까? 또 한국교회는 어떤 국면에 처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 머문 기간은 430년이었습니다. 그 기간에도 흥함과 쇠함이 있었습니다. 요셉이 애굽에 처음 갔을 때 처지가 딱했습니다. 노예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가 30세에 총리가 되자 상황이 급속히 달라졌습니다. 일곱 해 풍년이 오고 흉년이 두 번 들던 해에 형들이 곡식을 사러 애굽에 왔고 형제가 재회하게 됩니다. 그때 아버지 야곱을 비롯한 모든 가족이 다 애굽으로 이주했습니다. 그들은 바로의 배려로 기름진 고센에 살면서 번성했고 부귀를 누렸습니다. 이스라엘이 흥하던 때입니다.

쇠하는 때가 왔습니다. 출애굽기 1장 6~7절에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습니다. “요셉과 그의 모든 형제와 그 시대의 사람은 다 죽었고 이스라엘 자손은 생육하고 불어나 번성하고 매우 강하여 온 땅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요셉과 그의 모든 형제와 그 시대의 사람이 다 죽었다는 것은 불길한 전조입니다. 전성기를 구가하던 세대가 죽었다는 것은 쇠함의 국면이 임박했음을 암시합니다. 수는 많이 늘어나 외견상 번성하는 것 같았지만 얼마 후 요셉을 알지 못하는 바로가 등장했을 때 그들은 노예로 전락했고 압제에 시달렸습니다. 심지어 아들을 낳으면 강에 던져 죽여야 하는 일까지 겪었습니다. 처음엔 요셉 혼자 노예였는데 이제는 모든 백성이 노예가 됐습니다. 바닥으로 떨어진 가슴 아픈 역사가 시작됐습니다.

한 사회가 바닥에 떨어졌을 때, 한 나라가 가장 낮은 국면에 처했을 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국면을 전환해 다시 흥하게 할 창조적 소수입니다. 역사와 시대에 대한 사명감이 있는 새로운 세대가 일어나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일도 그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준비시키셨습니다. 마치 오래전 요셉이 선구자로 애굽에 와 총리가 됐다면, 이제는 모세가 선구자가 돼 백성을 이끌고 애굽을 벗어날 차례였습니다. 모세는 바닥에 떨어진 노예 백성 이스라엘의 비극적 국면을 전환 시켰습니다. 죽었던 백성의 마음이 깨어나 자유를 갈망하게 됐고, 그들은 당당하게 출애굽 했습니다.

지금 우리에게도 새로운 세대가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감과 사명감으로 무장한 모세 같은 인물이 필요합니다. 단순히 수만 늘어나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도 수는 늘었지만, 그저 노예가 늘어났을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하나님께서 주신 영감과 사명감으로 무장돼 있었습니다.

많은 이들이 한국교회가 쇠하는 국면에 있다고 염려합니다. 틀리지 않은 분석이라 여겨집니다. 상황이 그렇다면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영감과 사명감으로 무장된 창조적 소수를 키우는 일입니다. 생각 없는 다수가 아니라 모세 같은 한 사람을 준비시켜야 하겠습니다.

그 한 사람이 쇠함에서 흥함으로 전환하게 할 열쇠가 될 것입니다. 교회학교에 어린이와 학생들이 적다고 낙심하지 맙시다. 거기서 모세 같은 한 명이 성장한다면 성공입니다. 우리 교회와 교회학교와 성도의 가정이 모세가 부름을 받은 호렙산처럼 돼 모세 같은 다음 세대가 세워지길 소원합니다.

김운성 영락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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