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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 수준’ 분류 기준 만들고 예방 단계 민·관 함께 참여해야

전문가들은 앞으로도 군중 밀집 사고 등 예기치 못한 도시재난에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진은 서울지하철 9호선 여의도역 승강장이 승객들로 붐비는 모습. 국민일보DB




156명의 사망자가 나온 이태원 참사를 계기로 압사 등 예기치 못한 대형 재난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민관이 힘을 합쳐서 재난을 사전에 예방하고, 현행법의 사각지대를 해소하기 위해 책임소재를 명확히 규정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번 사고처럼 대형 도시재난은 사전 징후가 나타나긴 해도 상대적으로 불확실성이 높고 예측 가능성이 낮다는 점이 특징이다. 전문가들은 이태원 참사의 원인이 된 군중 밀집 같은 재난의 위험 정도를 제대로 평가해서 빠르게 대처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당장 위험 수준을 분류할 수 있는 기준 마련부터 시급한 상황이다. 현재 법령상으로 규정된 ‘밀집 상태’의 기준은 없지만 학술적으로는 ㎡당 6~7명 이상이 밀집하면 사고 위험이 커진다는 연구 결과가 통용되고 있다. 이를 규제에도 적용해야 한다는 얘기다.

조성일 서울시립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1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인파가 자주 몰리는 곳에 CCTV 등 장비를 설치해 밀집도를 실시간으로 확인·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창삼 인덕대 스마트건설방재학부 교수는 “경보 시스템을 구축하는 구조적인 해결책 외에도 일방통행 시행, 지하철역 무정차 운행 같은 비구조적인 해결책을 고려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민관의 적극적인 협력체계 구축이 필요하다는 점도 강조됐다. 지방자치단체와 경찰, 소방 등 기존의 관계 당국 외에도 구체적인 행사 내용이나 지역 특징에 대해 잘 아는 지역사회 관계자 등이 재난예방 과정에 주도적으로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수곤 전 서울시립대 토목공학과 교수는 “각종 위원회·민방위 등 원래부터 갖춰져 있는 지역 단위 조직을 재난예방 시스템에 참여시켜 주민들의 역량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청웅 세종사이버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이번 참사만 해도 구청이 상인연합회를 행사의 주체로 삼아서 안전요원 배치를 해 달라고 공문을 보낸 뒤 행정적인 지원을 했다면 상황이 나았을 것”이라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태원 참사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는 건 ‘주최자 없는 모임’의 경우 관리책임 의무가 모호하다는 것이다. 책임소재를 강화하기 위한 제도 개선뿐 아니라 안전관리계획 수립을 의무화해야 한다는 얘기도 나왔다.

채진 목원대 소방안전학부 교수는 “현재는 주체가 있는 1000명 이상 규모의 행사에 대해서만 안전관리계획을 수립하고 이행하게 돼 있다”며 “주체가 없더라도 군중이 모일 것으로 예상되는 행사는 지자체에서 안전관리계획을 의무적으로 수립하도록 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운집한 군중을 관리하는 지침 자체를 신설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대도시 곳곳에서 발생할 수 있는 혼잡도를 관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류상일 동의대 소방방재행정학과 교수는 “지금은 정식 행사나 축제가 아닌 단순히 사람이 많이 모이는 상황에 대한 매뉴얼은 마련돼 있지 않은 상태”라며 “소위 ‘오픈런’(물건을 사기 위해 개점 전부터 붐비는 상태)처럼 일상에서 사람이 몰려들 수 있는 여러 요소에 대해서도 매뉴얼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지자체가 재난문자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는 점도 주문했다. 서울시와 용산구청은 참사가 발생한 지난 29일 밤부터 이튿날 오전까지 9차례 재난문자를 전송했지만 이미 참사가 벌어진 뒤였다. 재난문자의 내용도 차량 우회와 접근 자제를 강조하는 수준에 그쳤다. 류 교수는 “재난문자의 전송 속도는 지난 포항 지진 등을 거치며 많이 개선됐다”면서도 “전송 시 매뉴얼을 개선하고 담당자들을 상대로 새롭게 교육해 사고 초기부터 시민에게 심각성이 전달될 수 있도록 개선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구조적인 보완 외에도 ‘시민의식 개선’을 대안으로 제시한 전문가들도 있었다. 매뉴얼이나 법령을 마련하고 다듬는 일과는 별개로 시민 개개인도 위험 대처 역량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의미다.

최돈묵 가천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상황마다 매뉴얼을 마련하는 데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라며 “훈련으로 사고를 방지하는 습관을 몸에 익혀 시민 개개인의 의식구조를 전환하는 것이 더 근본적인 해결책”이라고 말했다.

이의재 신지호 김용현 기자 sentine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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