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적보다 네가 더 소중해 알지?” 사교육 1번지 대치동 학원가서 만난 ‘위로 버스’

수험생 응원 메시지가 광고판에 부착된 340번 버스의 운행 모습. 서울 강동공영차고지를 출발해 강남역에서 회차하는 해당 노선은 주변 20여개 초·중·고교와 학원 밀집지역을 통과한다.






“1학기 마치자마자 ‘반수’(대학을 다니다 다시 입시를 치르는 것)를 결정했어요. 올해는 의대 아니면 지원서를 넣을 생각이 없어요. 국수탐(국어 수학 탐구) 백분위 99% 안에 못 들면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이라고 봐야죠.”(김인석·19) “수능 끝난다고 끝이 아니에요. 논술 특강, 면접 컨설팅 등 이미 연말까지 스케줄이 빼곡하게 차 있어요.”(유한나·고3)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을 엿새 앞둔 지난 11일 오후. 대한민국 사교육 1번지로 통하는 서울 대치동 학원가 앞에서 만난 수험생들 목소리엔 비장함이 묻어났다. 대학 입학을 결정짓는 수능은 여전히 ‘입신양명의 지름길’ ‘출세로 향하는 관문’으로 통하기 때문이다. 수능이 처음 도입된 1993년 11월, 수능 성적을 비관한 학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안타까운 일이 벌어진 이후 연말은 청소년을 더 각별히 살펴야 할 시기가 됐다.

교육단체 ‘사교육없는세상’이 지난 7월 발표한 ‘경쟁교육 고통 지표 설문조사’에서 국내 초·중·고생 4명 중 1명(25.9%)은 학업 성적으로 인한 불안과 우울감으로 자해나 극단적 선택을 생각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실제로 2011년부터 청소년 사망원인 1위를 차지하고 있는 ‘극단적 선택’ 비율은 최근 5년 새 급증해 2020년엔 처음으로 절반을 넘겼다(50.1%).

고3 수험생 유한나씨는 “수능날만이라도 가족에게 다른 얘기 말고 그냥 ‘수고했다’ 한마디만 듣고 싶다”며 학원 방향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유씨가 떠난 대치동 은마아파트 입구 사거리 버스정류장에 340번 버스가 들어섰다. 버스 옆면과 뒷면에 부착된 광고판에 시선이 꽂혔다. ‘성적보다 네가 더 소중해. 알지?’ 정류장에서 유심히 광고판을 바라보던 성연미(76)씨는 “손녀가 이번에 수능을 보는데 저 얘기를 꼭 해줘야겠다”며 쥐고 있던 스마트폰에 버스 사진을 담았다.

수험생을 위한 응원 광고판을 버스에 부착한 건 생명존중운동을 펼쳐 온 ‘아름다운피켓’(대표 서윤화 목사)이다. 서윤화 대표는 13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도심의 수많은 버스 중 한 대이지만 수험생과 그 가족 중 누군가에게 따뜻한 위로가 될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말했다.

아름다운피켓은 지난 7월에도 은마아파트 입구 사거리에서 청소년을 대상으로 생명존중 캠페인을 펼쳤다. 서 대표는 “수능이 가까워지면서 7월 캠페인 당시 거리에서 만났던 학생들이 떠올라 대치동을 지나는 버스에 응원 광고판을 부착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지난달 SNS 모금을 통해 광고 비용을 모으고 버스 노선을 수소문해 응원 광고를 부착하게 됐다”며 “수능 성적이 통지되는 다음 달 9일까지 수험생 응원버스가 도심을 달릴 것”이라고 덧붙였다. 강동공영차고지를 출발해 강남역에서 회차하는 340번 버스는 강일고 배재고 영파여고를 비롯한 20여개 초·중·고교와 학원 밀집지역을 통과한다.

조성돈 라이프호프 기독교자살예방센터 대표는 ‘수험생 마음 돌봄을 위한 체크리스트’를 소개했다. 먼저 시험 전에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는 마음가짐을 갖는 게 중요하다. 시험 후에는 ‘결과에 수긍하고 혹 원하는 결실을 맺지 못한다 해도 인생의 레이스는 길다’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조 대표는 “수험생 스스로 ‘카페인(카카오톡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중독’을 경계하고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판으로부터 거리두기를 하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불안한 마음을 해소하려 온라인 검색에 몰두하면 일시적으론 유대감을 느낄 수 있지만 심리적 안정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수험생 가족과 지인을 향한 당부도 전했다. 조 대표는 “수험생을 격려하고 응원의 말을 전할 때 성과 위주의 발언이나 새로운 목표에 대한 언급은 금물”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사람의 성공과 실패조차도 하나님의 응답이기에 초조해도 하나님께서 그 뜻대로 응답해 주실 것을 권면하는 말씀을 나누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며 로마서 8장 26~28절, 잠언 16장 1절, 빌립보서 2장 13절을 제시했다.

글·사진=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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