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션 얼라이브] 재벌 집 회장님이 궁금했던 하나님은 고통에 빠진 이들 구한 치유자요 새로운 소망

‘재벌’은 한국 사회에서 높은 화제성을 지닌 화두이다. 호감도는 낮지만 관심도는 매우 높다. ‘삼성 창업가 이병철의 하나님’을 펴낸 황의찬 전주 온고을교회 담임목사가 최근 서울 송파구 롯데타워에서 묵상 중 포즈를 취하고 있다. 왼쪽 사진은 JTBC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에서 순양그룹 회장역을 맡은 탤런트 이성민. JTBC·황의찬 목사 제공




한류 콘텐츠가 별을 그리고 있다. 세계 이목을 집중시킬 뿐 아니라 국내에서도 이슈의 중심에 선다. JTBC 주말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의 시청률이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기록을 뛰어넘었다. 한국 사회에서 ‘재벌’은 온 국민의 시선을 끌어모으는 힘이 있다. 호감도는 낮지만 관심도는 높다. 그래서 재벌 기업과 가계(家系)에 관한 관심과 논란은 늘 현재진행형이다.

재벌 집 막내아들에는 매우 특이한 프레임이 있다. 흔히 ‘전생’이라 하면 아주 오래전 인물의 생애를, 현재를 사는 사람에게 덧씌우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이 드라마에서는 미래시제에 살았던 주인공이 30년 뒤로 후퇴해 과거 시점을 현재로 살아가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려 낸다. 주인공은 향후 30년까지를 알고 있다. 자신이 이미 경험했기 때문이다. 극 중에서 재벌 집 막내 손자에게 빙의된 미래 전생은 초극적 예지력으로 숱한 난관을 돌파하고 재벌그룹을 손아귀에 넣는다.

한치 앞을 알지 못하는 인간의 한계 상황에서는 한국의 거대 재벌의 탄생이 불가능하지만, 그 가문에 미래를 투시하는 인물이 존재했다면 얼마든지 가능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드라마는 불가사의한 재벌 그룹의 가능성을 이렇게 해석해 낼 수도 있겠다는 공감대를 최대치로 견인한다. 그것이 너무나 명백한 허구임을 모르지 않지만, 굳이 공감해 주고 싶은 시청자 심리가 시청률에 반영된 것이다.

이러한 판타지가 아닌 냉혹한 현실에서 한국 재벌의 상징적 인물인 고(故) 이병철 회장에게 초점을 맞추고 그의 성공과 실패를 조망하면서 그의 존재를 추적한 목회자가 있다. 마침 이 회장이 생전에 하나님에 대한 24가지 질문을 남겼다는 사실은, ‘전생’을 과거가 아닌 미래로 설정해 재벌의 탄생 비화를 비추려는 발상보다 훨씬 극적이고 운명적인 신(神)의 연출이다.

2022년 성탄절을 앞두고 ‘삼성 창업가 이병철의 하나님’을 저술한 황의찬(68) 목사를 지난 19일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에서 만났다. 전주 온고을교회 담임을 맡고 있는 황 목사는 이 회장이 하나님에 대한 질문서를 작성해 개신교 진영에, 그리고 가톨릭의 한 신부에게 전하고 답을 구했었다는 것을 알고 깊은 관심을 가졌다. 호암 이병철은 워낙 걸출한 인물이기에 그가 남긴 질문에 대한 답변서가 이미 6~7종 출판됐지만 모두 질문 당사자인 이 회장의 삶보다는 질문 내용에 초점을 맞추고 답변을 시도했다. 황 목사는 한국 최고 재벌 회장이 기독교인이 아니면서 왜 하나님을 찾아야 했는지가 궁금했다.

사람들은 누군가 돈이 많으면 손에 물도 안 묻히고 마른 땅만 골라 디디며 덜 가진 자와 비교해 더 가진 만큼 더 행복한 줄 안다. 한국에서 그런 인물로 첫손가락에 꼽히는 사람을 찾으라면 단연코 이 회장이다. 요즘 세대는 그의 아들 이건희, 손자 이재용 회장을 지목할 것이다. 그러나 놀랍게도 호암은 ‘하나님의 존재를 어떻게 증명할 수 있느냐’는 질문을 필두로 진화와 생명 합성, 인간의 고통과 불행, 죽음, 선과 악, 영혼, 지구 종말에 이르기까지 망라해 질문하고 있다. 안타까운 것은 1987년 이 질문을 가톨릭의 한 사제에게 전달하고 답변을 듣지 못하고 한 달여 만에 사망했다는 사실이다.

이 회장은 평생 논어를 읽으며 살았지만 그는 삶의 굽이굽이에서 하나님을 찾고 있었다. 그가 찾은 존재는 성경의 하나님이었다. 별세하기까지 그가 기독교의 삼위일체 하나님을 자신의 주님으로 영접했다는 근거는 남기지 않았다. 그러나 전 생애에 걸쳐 하나님을 궁금해하고 때로는 삶의 질곡에서 하나님이 혹시 빛을 비추지 않을까 기대했음이 분명하다.

일본경제신문 한국 특파원 야마자키 가쓰히코가 1970년쯤 이병철에게 ‘왜 그렇게 열심히 사업을 일으키느냐’라고 묻자 그는 빙그레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나 자신도 잘 모르겠지만 창조적 충동에 의한 것이라고 해야 할 듯싶네요.” ‘자신도 잘 모르겠다’라는 이 회장의 솔직한 토로와 ‘창조적 충동’은 그가 남긴 24가지 질문에도, 그가 애타게 찾아 헤맨 자기 질문의 답변에도 관통하는 주제라고 황 목사는 풀이했다.

“하나님은 사람을 ‘자신도 잘 모르는 존재’로 지으셨지요. 모름지기 사람에게는 저마다의 ‘창조적 충동’을 지니도록 하셨어요. 저는 창조주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24가지 질문’이 가지는 함의 속에서 답을 찾아 나섰습니다.” 황 목사는 자신의 삶 가운데 있는 질곡과 간난신고를 이병철에게 투사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10여년 전 이별한 청각장애 아들을 향한 단장(斷腸)의 참척(慘慽)은 작가만의 것이 아니라 호암의 것이기도 하다.

딸이 같은 청각장애인과 결혼해 두 아이를 낳고 5년여 살다가 별거한다고 친정으로 들이닥쳐 끝내 이혼으로 치닫고 있었다. 목사로서 딸의 이혼을 막아보려다가 무기력증에 빠져 허우적거렸다. 아무것도 손에 잡을 수 없었는데 오래전부터 품어왔던 이병철의 질문에 대한 답변을 시도하는 일은 어쩌면 가능하리라는 실낱같은 기대를 꺼내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17번째 질문에 대한 답변을 쓰다가 황 목사는 전립선암 진단을 받았다. 이 회장이 위암에 이은 폐암으로 작고했는데, 황 목사도 암 환자가 되었으니 이병철을 써 내려갈 수 있게 되었다는 역설이 가능해졌다.

황 목사는 지금 수술 시기를 놓쳐 호르몬 요법 치료를 받으면서 하나님의 음성에 바짝 귀를 기울이고 있다. 그 점에서 ‘이병철의 하나님’과 ‘황의찬의 하나님’은 다르다. 같은 하나님이지만 서로에게 다르다. ‘이병철의 하나님’으로 제목을 달아 출판하자 종종 “이병철씨가 기독교인인가요”라는 질문을 받는다. 그가 주님을 영접했다는 근거는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호암만큼 애타게 하나님을 찾고 치열하게 질문한 사람도 흔치 않다.

“상처가 변하여 별이 된다는 영국 속담도 있습니다. 세상을 아무런 고난 없이, 질고도 없이 사는 인생은 없습니다. 천하의 이병철 회장이라도 누구 못지않은 고통을 견뎌내야 했습니다. 저는 이 회장을 들여다보다가 ‘이분은 나보다 고통이 훨씬 컸던 분’이라는 확신을 하게 됐고 그래서 책을 써 내려 갈 수 있었습니다. 위로받기보다는 고난에 빠진 자에게 위로를 주는 삶의 자리를 지키는 것이 목회자이자 신학자가 아닐까요.”

황 목사는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에서 고난과 질고를 당하는 이들보다 더 처절한 고통의 자리인 십자가에 못 박힘으로써 치유자가 됐다고 단언한다. 세상 그 어떤 고난보다 더 큰 고난이 십자가이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가장 낮은 자리에서 허덕이는 생명의 아랫자리로 내려가 위로 떠밀어 올려주는 분이다. 그분은 이 사명을 위해 동정녀의 태를 빌어 태어나야 했다. 그리스도가 그렇게 함으로써 살 만한 세상을 만들었다는 얘기다.

이병철은 고난의 사람이었다. 금고에 돈이 넘치면 고난과 질고도 그만큼 넘친다. 그런데도 ‘창조적 본능’에 따라 쓰러지지 않고 기업을 일으킨다. 드라마에서 재벌 집 막내아들은 30년 후의 미래에 살다가 10살짜리 재벌 집 막내 손자에 빙의됐다. 그에게는 고난과 질고가 따라붙지 않을까.

사명을 감당한 예수는 다시 영광스러운 자리에 올랐다. 그 자리는 우리가 바라보며 소망의 끈을 붙잡는 자리이다. 그 자리를 바라볼 수 있기에 30년 미래를 훤히 안다손 치더라도 소망의 끄나풀을 붙잡을 수 있다. 시작과 종말에 관해 황 목사는 두 개의 이야기로 정리한다. 주어가 있는 이야기와 주어가 없이 전개되는 이야기다. 두 이야기는 종말에서도 확연히 구분된다. 주어가 없는 서사는 종말 이후에 대해 언급이 없다. 주어가 없으니 당연하다. 그러나 주어 있는 서사에는 종말 이후에도 주어는 살아 있다.

“‘끝은 새로운 시작’이라는 경구처럼, 성경은 지구를 포함한 우주의 종말이 새로운 시작이라 선포합니다. 구약에서 이사야 선지자가 ‘새 하늘 새 땅’을 예고하고 신약에서 사도 요한이 새 하늘과 새 땅을 구체적으로 묘사합니다.”

황 목사는 창조주 하나님 이야기 속 종말은 ‘새로운 소망’이라고 설명한다. 종말은 누구에게나 두렵다. 종말을 경험하고 들려주는 이가 없으니 더욱 그렇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기의 피조물이 두려워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성경을 선물로 주셨다. 성경은 분명히 종말이 있다고 천명한다. 하지만 성경은 믿는 자에게 종말은 두려움이 아니라 새로운 소망이라고 확인해준다.

황의찬 목사는 한국도로공사에 근무하다가 쉰 줄에 들어서면서 침례신학대 신학대학원(M.Div.) 문을 두드렸다. 신대원을 졸업하고 전주 온고을교회를 개척했다. 2017년 침신대에서 ‘하나님의 기름 부음’을 주제로 박사 학위(Th.D.)를 취득하고 학위 논문을 ‘하나님의 기름부음’이란 제목으로 출간했다. 청각장애인 자녀 남매를 키우다 하나를 잃은 자초지종을 기록한 ‘침묵하지 않는 하나님’을 출간했다. 이 외에도 ‘밧세바의 미투’ ‘붕어빵’ ‘아담은 빅뱅을 알고 있었다’ ‘삼성 창업가 이병철의 하나님’ ‘너 알아? 전주대학교(설립자 강홍모 행전)’ 등을 펴냈다. 이병철의 하나님을 발간하면서 황 목사는 전기작가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윤중식 종교기획위원 yunj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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