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션 톡!] 공수처장 ‘울컥 시무식’서 부른 시가 뭐길래…

김진욱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이 지난달 2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디트리히 본회퍼 목사. 국민일보DB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김진욱 처장이 최근 종교 편향 논란으로 곤욕을 치르고 있습니다. 9일 법조계와 언론 보도 등에 따르면 김 처장은 지난 2일 공수처 새해 시무식에서 디트리히 본회퍼(1906~1945) 목사의 시 ‘선한 능력으로’를 소개하고, 이 시구를 바탕으로 작곡된 찬양을 부르면서 눈물을 흘렸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독실한 기독교인인 김 처장의 처신을 두고 일각에서는 ‘공인으로서 신중하지 못했다’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대한불교조계종은 성명까지 내고 정부부처 수장이 공식 석상에서 특정 종교의 찬양곡을 부른 행위는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비판했습니다. 고위공직자는 정치·종교적 중립 의무를 지켜야 하는 자리입니다. 그런 차원에서 김 처장의 행동이 다소 신중하지 못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여론을 의식해서인지 김 처장은 지난 5일 입장문을 내고 “공직자이자 수사기관장으로서 특정 종교에 편향적으로 비칠 수 있는 언행을 한 것은 부적절했다.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습니다.

김 처장의 유감 표명과 별도로 그가 부른 찬양곡의 바탕이 된 시 ‘선한 능력으로’는 새해 새 출발을 시작하는 기독교인이라면 한 번쯤 천천히 음미해볼 만한 시입니다.

‘선한 능력에 언제나 고요하게 둘러싸여서/ 보호받고 위로받는 이 놀라움 속에/ 여러분과 함께 오늘을 살기 원하고/ 그리고 여러분들과 함께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기 원합니다.’ 이렇게 시작하는 시는 죽음을 기다리지만 하나님이 보호하시고 앞으로 일어날 일을 믿음으로 기대한다는 본회퍼 목사의 옥중 신앙고백을 담고 있습니다. 이 시는 그가 1944년 히틀러 암살 작전인 일명 ‘발키리 작전’에 실패한 뒤 수감돼 감옥에서 죽음을 앞두고 약혼자에게 마지막으로 쓴 편지에 담겨 있습니다.

독일 고백교회 목사이자 신학자인 본회퍼 목사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히틀러의 나치 정권에 대항한 대표적인 기독교 인사입니다. 1942년 동지들과 함께 반나치 지하조직을 주도하다가 1943년 게슈타포에 체포돼 베를린의 티겔형무소에 수감됐습니다. 1945년 4월 미군의 진출 직전 플뢰센베르크의 수용소에서 39세의 젊은 나이에 처형됐습니다.

이 시가 담긴 그의 ‘옥중서간’은 그의 유작으로 지금까지도 많은 기독교인에게 감동과 영감을 주고 있습니다.

특히 하나님의 강한 능력을 확신하고 있는 ‘믿음의 사형수’가 선포하는 고백이라는 점에서 불확실한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에게도 큰 울림으로 다가옵니다.

일각에선 김 처장이 이 시로 찬양을 부른 데 대해 ‘공수처 폐지’를 주장하는 현 정권과 검찰을 나치 정권에 비유한 것이 아니냐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정치공학적 색채를 빼고 생의 마지막에 남긴 한 크리스천의 고백으로 그의 시를 묵상해보길 추천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밤이나 아침이나 우리 곁에 계십니다. 또한 매일의 새로운 날에 함께하십니다.’ 올 한 해 우리 모두의 기도가 되면 좋겠습니다.

유경진 기자 ykj@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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