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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대통령 지지자들, 대법원·의회·대통령실 대낮 습격

자이르 보우소나루 전 브라질 대통령을 지지하는 시위대가 8일(현지시간) 수도 브라질리아 의회에 난입해 지붕 위에 올라간 모습. 시위대는 의회 앞에 설치된 바리케이드를 넘은 뒤 문과 창문 등을 부수고 안으로 침입했다. AFP연합뉴스


자이르 보우소나루(67) 전 브라질 대통령 지지자 수천명이 브라질 의회와 대법원, 대통령 집무실을 습격하고 군부대의 쿠데타를 촉구하는 난동을 부렸다. 2021년 1월 6일 미국 의사당 난입 사건 때처럼 시위대는 지난해 10월 대선이 부정선거라고 항의하며 폭동을 일으켰다.

8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 AP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 지지자 수천명은 이날 오후 2시30분쯤 버스 수십대에서 내린 뒤 수도 브라질리아 연방 관구 내 의회 앞에 설치된 바리케이드를 넘어 문과 창문 등을 부수고 침입했다.

시위대 상당수는 브라질 국기를 몸에 두르거나 국기를 상징하는 노란색과 초록색 옷을 맞춰 입고 대선사기를 주장했다. 의회 건물 지붕에 올라 브라질 군대의 쿠데타를 촉구하는 ‘개입’이라는 뜻의 플래카드를 펼치기도 했다. 다른 시위대는 대통령궁과 대법원으로 몰려갔고, 경찰을 저지하기 위해 의자 등으로 장애물을 설치했다.

대통령 집무실 밖에서 시위대가 막대기로 말을 탄 경찰관을 때려 끌어내리는 장면이 담긴 현장 영상 등이 SNS에 올라왔다. 경찰은 헬리콥터에서 폭동 진압용 최루탄을 발사하며 시위대와 충돌했다. 폭동은 오후 늦게 진압됐고, 이 과정에서 400여명이 체포됐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폭동 당시 의회 회기 중이 아니었지만, 이번 난입 사태로 브라질의 정치적·사법적 기관들에 대한 보안에 의문이 제기됐다”고 분석했다.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브라질 대통령은 지난해 말 발생한 홍수 피해 지역인 아라라콰라를 방문 중이어서 폭동을 피할 수 있었다. 그는 사태 보고를 받은 뒤 시위대를 ‘광신도, 파시스트’로 부르며 강력 처벌을 지시했다. 또 “전례가 없는 일로, (공공건물을 습격한) 사람들을 모두 찾아내서 처벌할 것”이라며 “모든 법령을 동원해 죄를 묻겠다”고 말했다.

브라질 당국은 이번 폭동의 1차 책임자로 브라질리아 연방특구의 이바네이스 호샤 주지사를 지목했다. 브라질 연방 대법원은 이날 호샤 주지사에 대해 3개월 정직 명령을 내리며 “호샤 주지사가 사건(폭동)에 대해 극도로 침묵했다”고 밝혔다.

알렉상드르 드 모라에스 대법관에 따르면 폭동과 관련한 인사들에 대한 집단적 움직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호샤 주지사는 브라질리아에서의 ‘자유로운 정치 시위’를 옹호한다는 명분으로 모든 시위를 허용한다고 발표했다. 게다가 시위대의 위협에 따른 보안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는 당국의 모든 요청을 무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룰라 대통령은 지난 대선에서 ‘50.9%대 49.1%’라는 근소한 득표율 차이로 결선 투표에서 승리했다. 이후 보우소나루 지지자들은 브라질리아 주요 군부대 앞에 이른바 ‘애국 캠프’를 차리고 룰라 취임 반대 시위를 벌이는 등 선거 불복 움직임을 보여 왔다.

워싱턴포스트(WP)는 “선동적인 정치적 수사로 급진화된 강경파들이 선거 패배를 받아들이기를 거부하고 근거 없는 사기 주장에 매달리며 법치를 훼손하고 있다”며 “서구 민주주의에서 극우 파괴자들의 전염병이 번지고 있음을 시사한다”고 평가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충격적”이라며 시위대를 비판했다.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트위터에 “미국은 브라질의 민주주의를 훼손하려는 모든 시도를 비난한다”며 “브라질의 민주주의 제도에 대한 우리의 지지는 흔들림이 없다”고 밝혔다.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도 룰라 대통령을 지지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번 폭동에 간접적 책임이 있는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은 현재 브라질이 아닌 미국 플로리다주 올랜도에 머무는 것으로 전해졌다. 비행추적 사이트 플라이트어웨어에 따르면 지난달 30일 올랜도에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의 브라질 비행기가 착륙했다.

워싱턴=전웅빈 특파원, 박재현 기자 im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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