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선지자가 예루살렘 밖에서는 죽는 법이 없느니라



예수님은 헤롯이 자신을 죽이려 한다는 소식을 바리새인들로부터 전해 들었습니다. 이 말을 전해 들은 예수님은 헤롯 왕을 ‘간사한 여우’라고 했습니다. 소식을 전한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에게 ‘여기서 떠나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결코 헤롯의 협박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32절). 예수님은 “오늘과 내일과 모레는 내가 갈 길을 가야 하리니 선지자가 예루살렘 밖에서는 죽는 법이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33절). 왜 이렇게 말씀하셨을까요.

첫째, 예수 자신의 사명 수행에 따른 자신의 존재적 가치(성자 하나님)를 말하는 것입니다.

본문 32~33절은 “…완전하여지리라 하라 그러나 오늘과 내일과 모레는 내가 갈 길을 가야 하리니 선지자가…” 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선지자라고 지칭합니다. 헤롯의 협박에 대해 조금도 동요하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오늘과 내일과 모레’에서 오늘은 현재를 말합니다. 내일은 예루살렘에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자신의 사역을 완성하기까지의 기간을 의미합니다.

‘완전하여지리라’는 예수님이 예루살렘에서 십자가에 죽으심과 부활, 승천으로 말미암아 그의 지상 사역을 완수하신다는 것입니다. 이는 자신의 ‘존재적 가치’를 표명하는 말입니다. 주님은 사람을 의지하지 않았습니다. 인간의 죄악 된 속성을 지닌 마음을 미리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전지성(全知性)’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영원하십니다.

둘째, 예수 자신의 사명 수행에 따른 자신의 신적 활용가치(사명, 본질)를 말하는 것입니다.

본문 35절은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린바 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를 찬송하리로다 할 때까지는 나를 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고 말씀합니다. 예루살렘의 타락상은 단순 종교적 타락이 아닌, 이스라엘 백성의 생활에 걸친 총체적 타락이었습니다.

이것이 무서운 이유입니다. 종교적 타락은 모든 타락과 등식화됩니다. 본문에서 ‘너희 집’은 예루살렘 성전을 가리킵니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는 시편 118편 26절 말씀의 인용입니다. 예수님께서 승천 후 재림하실 때까지 사람들이 그를 보지 못할 것이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예루살렘은 이스라엘 전체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셋째, 예수 자신의 사명 수행에 따른 자신의 유일무이한 교환가치(구원)를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저들을 향해 하나님이 파송한 선지자와 사자를 살해하고 돌로 쳐 죽인 장본인이라고 지적합니다. 성경은 이들의 악한 행위를 들추어내고 있습니다.

본문 33절에 ‘예루살렘 밖에서는 죽는 법이 없느니라’는 말의 의미는 헤롯이나 바리새인들, 그 누구도 자신의 의지나 목적대로 예수를 죽일 수 없다는 사실을 천명하는 말입니다. 또한 예수님은 예루살렘에서 자신의 생명이 끝난다는 것을 이미 알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이 세상에 온 목적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는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시려고 오셨습니다(마 20:28; 막 10:45). 이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 자신의 교환가치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예루살렘 밖에서 죽지 않습니다. 우리를 죽이는 자는 예루살렘 안에 있습니다. 성도가 돈 때문에 죽고 자식 때문에 죽고, 명예 때문에 죽고, 기타 여러 세상의 이해관계 때문에 죽어서는 안 됩니다. 오직 각자가 받은 거룩한 사명을 다하기 위해 담대히 십자가의 길을 갈 뿐입니다. 아멘.

강구원 목사(갈보리교회)

◇대한예수교장로회 고려 교단에 소속된 갈보리교회는 1989년 5월 1일 서울 관악구에 설립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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