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중국 심천의 누오후에서 홍콩 주룽반도로 가는 KCR 기차를 타고 가면, 샤틴역을 지나 따이와이역에 이르는 중간쯤, 오른편 도풍산 위에 세워진 큰 십자가를 보게 됩니다. 그 십자가 위에 검은 글씨로 ‘성료(成了)’(다 이루었다)라고 크게 적혀있습니다. ‘많은 성경 구절 가운데 왜 하필이면 이 구절인가?’ 저의 묵상은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요한복음을 읽다 보면 예수님의 자기인식 방법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사도 요한은 요한복음 서문에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라고 언급하면서 예수님이 성육신하신 하나님의 아들임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의 많은 구절을 보면 예수님은 자신을 하나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은 자라고 스스로 인식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요 3:17)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요 4:34)

심지어 “나를 믿는 자는 나를 믿는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며 나를 보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보는 것이니라”(요 12:44~45)라고 하시면서 아버지와 아들을 하나로 일체화하셨습니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요 17:3~4)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기 전날 밤 겟세마네 동산에서 제사장적 기도를 드리실 때 우리가 주목할 만한 두 가지 개념이 서로 연결되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3절의 ‘그가 보내신 자’라는 표현과 4절의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이 그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 ‘보냄을 받은 자’라는 인식과 함께 보냄을 받을 때 받은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의식하셨습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자기 정체성이며 사명이었습니다. 그의 사명은 이것을 이뤄 아버지를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십자가에서 마지막 숨을 내쉬며 말씀하셨던 ‘다 이루었다’(요 19:30)는 선언은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라는 기도(요 17:4)와 연관된 것임이 분명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두려움에 떨고 있는 제자들에게 나타나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중국어나 한자에 익숙한 사람들은 사도(使徒)의 뜻이 ‘보냄을 받은 무리(복수)’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굳이 단수로 표현하자면 사자(使者)가 됩니다.

누가가 자주 사용한 사도라는 단어가 예수님이 보낸 제자들을 지칭한 것이면, 오늘날 그리스도 안에서 부름을 받아 제자의 삶을 살아갈 것을 요구받는 우리도 같은 사명을 지닌 자가 됩니다. 나아가 우리를 보낸 분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인식한다면 우리도 사도적 사명을 가진 자가 됩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우리에게 “세상에서는 우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 16:33)라고 말씀하십니다. 지금 내가 있는 이곳이 주님이 보내신 곳이요,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다 이루어 아버지께 영광이 되는 삶을 살아낼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김경복 목사(한국오픈도어선교회 사무총장)

◇한국오픈도어선교회는 국제오픈도어선교회의 한국 지부로 1995년 설립됐습니다. 전 세계 박해받는 교회와 북한의 지하교회 성도들을 강하고 온전케 하는 일에 헌신하고 있습니다. 한국교회의 인적·물적 자원을 동원하며 박해받는 그리스도인들을 돕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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