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하나님 이야기



우리의 심성을 맑게 하는 모든 예술의 밑바탕에는 이야기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음악과 이야기가 만나서 오페라가 되고 노래가 되며, 이야기와 색채 그리고 조형물이 만나면 미술 작품이 됩니다. 또 이야기와 몸짓이 만나면 무용이 되고 행위예술이 됩니다. 이처럼 이야기는 우리 생활 속에서 항상 우리와 함께 숨 쉬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이야기를 듣고 자랐습니다. 할머니 무릎을 베고 이야기 들었던 때가 기억이 납니다. 그런 이야기 중에 어떤 것은 판소리나 연극 등으로 바뀌어 다시 우리 곁에 돌아온 것도 있습니다. 이렇게 이야기와 친숙하게 자란 우리는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과 이야기를 하면서 행복감을 느낀다고 합니다. 이처럼 이야기는 우리를 웃게 하고 울게 하면서 생활에 활력을 줍니다. 이 이야기 속에 영적인 하나님의 이야기인 말씀을 탑재하면, 바이러스가 온몸에 퍼지듯이 살아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듣는 사람들에게 엄청난 영향력을 끼치는 파급효과가 나타납니다. 출애굽기 33장 11절에는 “사람이 자기의 친구와 이야기함 같이 여호와께서는 모세와 대면하여 말씀하시며”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대할 때에 친구와 이야기하듯이 친밀하게 대화하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야기하다는 히브리어로 ‘다바르’인데 ‘하나님의 말씀 또는 특정한 사건’을 말하기도 하고, ‘스토리’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히브리서 4장 12절은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해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씀을 “활력이 있다”고 했습니다. 이 말은 헬라어 ‘에네르게스’라고 하는데 영어의 ‘energy(에너지)’가 이 말에서 기원합니다. 즉 하나님의 이야기인 말씀에는 엄청난 에너지가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이야기에는 메카톤급의 힘이 있어서 듣는 이를 감동케 하며 명확한 삶의 변화가 나타나게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 이야기의 힘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어떤 이야기를 많이 하면서 사는가요?

믿는다고 하는 신도들도 이야기하는 것을 들으면 대부분 하나님 이야기보다도 세상 이야기하는데 많은 시간을 소일합니다. 먹고사는 이야기, 살아가는 이야기, 집 이야기, 정치 이야기, 돈 이야기 등등으로 우리의 시간 대부분을 보냅니다.

하나님과의 이야기가 단절된 사람은 자신의 주변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임재를 읽어낼 능력을 상실한 사람들입니다. “To meet is to meat”라는 말이 있지요. “만나는 것은 맛있는 것이다”라는 뜻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면 맛이 납니다. 온종일 이야기해도 시간 가는 줄 모릅니다. 왜 그럴까요. 서로의 생각하는 바와 느끼는 바가 통하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은 하나님과 통하는 사람들입니다. 이제부터라도 하나님과 만나기를 즐기며, 하나님과 이야기하는데 눈을 떠야 합니다. 하나님을 만나는데 푹 빠져야 합니다.

하나님과 모세는 할 이야기가 많았었나 봅니다. 반면에 나는 어떠한지 잘 생각해 봅시다. 우리 모두 이런 면에서 고민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모세가 하나님과 할 이야기가 많았다면 오늘 이 시대를 사는 나는 하나님과 어떤 이야기를 하는 사람인가? 또 나는 하나님과 이야기하는 것을 즐기는 사람인가를 스스로 자문해 보아야 합니다. 사랑하면 수다쟁이가 된다고 하지요. 하나님을 사랑하게 된 사람이 하나님을 만나면 할 말이 많아지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하나님 이야기 듣는 것을 즐거워하며, 또 하나님께 이야기하는 것을 기쁨으로 여기는 사람이 돼야 합니다.

정정인 목사(한빛장로교회)

◇정정인 목사는 현재 한빛장로교회 담임목사로 사역하고 있습니다. 대신총회신학연구원 법인이사장 및 대신미래목회연구소 소장으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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