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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 감축 시대 종언… 미·러, 우크라 수렁에서 생존게임 시작됐다

러시아 육군 병사가 지난 11일(현지시간) 다연장로켓발사기용 포탄을 어깨에 메고 우크라이나 전쟁 최전방 작전 지역으로 향하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1일 미국과의 핵군축 조약인 신전략무기감축협정(뉴스타트) 참여 중단을 선언하면서 미·러 간 핵군비 경쟁이 다시 시작될 위기다. TASS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미국과의 핵군축 조약 신전략무기감축협정(New START·뉴스타트) 참여 중단을 선언하면서 ‘핵 감축 시대’가 종언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미·러 간 극한 대결이 강대국의 핵군비 경쟁을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뉴욕타임스(NYT)는 21일(현지시간) “핵군축 조약에 대한 푸틴의 움직임은 공식적인 군비 통제의 종식 신호일 수 있다”며 “미국과 러시아의 마지막 핵 협정이 끝나가고 있고, 군비 통제가 소멸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뉴스타트는 2026년 2월까지만 유효한 상태다. 미·러 양측은 연장 협상을 벌여왔지만 우크라이나 전쟁 시작 이후 대화는 사실상 끊겼다.

러시아 외무부는 푸틴 대통령이 뉴스타트 참여 중단을 선언한 국정연설 직후 “이 결정은 뒤집힐 수 있다”며 최종 결정이 아니라는 뜻을 밝혔다. 미국이 정치적 의지와 긴장 완화를 위한 선의를 보이면 결정을 번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푸틴 대통령도 조약 탈퇴가 아니라고 언급, 러시아는 당분간 핵탄두 수 제한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계획 통보 등 의무를 준수하기로 했다.

그러나 전쟁이 1년 가까이 진행되는 동안 양국 갈등이 최고조에 달한 상황이어서 대체 협상을 모색하기가 불가능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폴란드 왕궁 정원의 쿠비키 아케이드 연설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이 러시아의 승리가 되는 일은 결단코 없을 것”이라며 전의를 다졌다. 푸틴 대통령의 “러시아를 전장에서 패배시키는 건 불가능하다”는 국정연설 발언을 겨냥한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을 중단하면 전쟁이 끝나지만, 우크라이나가 방어를 중단하면 우크라이나의 종말이 된다”며 “우크라이나에 대한 우리 지원이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는 데 의심의 여지가 있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바이든과 푸틴은 서로 상대가 질 수밖에 없다며 전쟁의 결과를 자신의 미래와 연결했다”며 “서방과 러시아 간의 생존 전쟁으로 격상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중국과 이란 북한이 핵전력 강화에 나서고 있어 이미 군비 경쟁이 시작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비핵화 단체인 글로벌 제로 존 볼프스탈 수석 고문은 “러시아가 조약을 깨고, 중국이 무기를 확장하고, 북한이 미사일 시험을 하는 상황”이라며 “푸틴의 발언은 정치적 선언에 가깝지만, 미국이 러시아와 경쟁하고 중국이 러시아를 따라잡을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핵무기를 확장해야 한다는 요구를 부추길 것 같다”고 우려했다.

카네기 국제평화재단의 제임스 액턴은 “뉴스타트가 종말을 맞기 전에도 중국과 러시아, 미국은 군비경쟁을 벌이고 있었다”며 “러시아의 뉴스타트 중단 결정이 이를 가속할 수 있다”고 말했다. NYT도 “핵군축 협상이 어려워지고 있다”며 “미·러 간에는 소통이 없고, 신뢰가 존재하지 않는다. 뉴스타트는 전술 핵무기를 다루지 않고 있고, 중국은 군축 협상에 관심을 안 보인다”고 지적했다.

노르웨이 오슬로 핵 프로젝트 소속 제임스 캐머런 연구원은 “상대의 전력을 어림짐작으로밖에 알 수 없는 탓에 양측 모두 최악의 시나리오를 바탕에 두고 더욱 정교한 (핵무기) 체계와 계획을 도입하면서 큰 불안정이 생겨날 것”이라고 말했다.

워싱턴=전웅빈 특파원 im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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