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김재열 뉴욕센트럴교회 담임목사(3)의식없는 어머니 손 잡고 기도

김재열목사(맨우측)가 1963년 숭실고등학교 2학년 재학시절 남한산성에서 친구들과 함께했다.


동생이 쓴 편지를 뜯었다. 잉크로 휘갈긴 글씨 속에는 절망만 가득했다.

“형, 빨리 서울로 올라와. 아버지는 신문사 퇴직하고 사업을 하다가 망했어. 어머니는 이름도 모르는 병에 걸려 죽어가고 있어. 나는 팔뼈가 부러졌고 동생은 빗장뼈가 부러졌어. 이러다가 집안 풍비박산 나겠어. 빨리 와.”

편지를 읽어보니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장남이라고 하는 인간은 폐병에 걸려서 2년 이상 집에 가지도 못하고 있었다. 편지를 움켜쥐고 땅바닥을 치며 소리를 질렀다.

아버지의 사업실패로 집안 '풍비박산'
전도의 기회로 생각하고
어머니 치유통해 식구들 모두 교회로


“하나님, 정말 이래도 되는 겁니까. 예수 믿으면 복을 주신다고 했는데 복은 고사하고 집안 뿌리가 송두리째 뽑히게 됐습니다. 이게 뭡니까.”

한참을 그렇게 소리치고 있는데 하나님의 미세한 음성이 들렸다. “너 저번에 기도 제목이 뭐라고 했니.”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가족 모두가 예수 믿게 해달라고 했죠.” “그래, 그래서 그 상황이 된 거야.”

그 순간 망치로 머리를 맞은 느낌이 들었다. ‘아, 그렇구나. 이건 하나님이 주신 기회다. 가족들이 깨지고 넘어지더라도 예수님만 똑바로 믿으면 영원한 생명을 얻고 축복을 받는다. 주님, 감사합니다.’

그날 서울행 야간열차에 몸을 실었다. 서울역에 내리니 동생이 마중 나와 있었다. “아니, 걸어서 5분 거리의 집인데 뭣 하러 나왔냐.” “편지에 썼잖아. 집안이 다 망했다니까.”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아버지는 신문사를 퇴직하고 사업을 시작했다가 몽땅 사기를 당했다. 금호동 종점까지 버스를 타고 갔다. 내려서 야산을 하나 넘어가는데 옥수동 부근이었다. 조그만 셋집에 병자가 된 가족들이 누워있었다.

눈물이 앞을 가렸다. “엄마, 큰아들이 2년 만에 돌아왔는데, 대답 좀 해봐.” 누워있는 어머니는 의식이 없었다. 초췌한 몰골의 아버지는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었다.

어머니는 아무리 불러도 대답이 없었다. ‘그렁그렁’ 소리가 나더니 나중에는 숨넘어가는 소리가 났다. 가만히 있어선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 이제부터 내가 기도할 테니 같이 따라서 기도하세요. 그러면 병이 나을 겁니다.”

앙상한 어머니의 손을 잡고 눈물로 기도했다. 얼마나 기도했는지는 모른다. 눈을 떠보니 ‘그렁그렁’ 하는 소리는 사라졌다. 하루 이틀이 지나도 그냥 누워서 주무시는 것 같았다. 의식이 있는 것 같긴 한데 도무지 반응이 없었다.

사흘째 되던 날이었다. 부엌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문을 열어보니 어머니가 손빨래를 하고 있었다. 여름 벗어놓은 빨래가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는데 하이타이를 뿌려놓고 살살 주무르고 있는 게 아닌가.

“어, 엄마 어떻게 된 거야.” “응, 재열아. 네가 기도해준 다음부터 몸이 가볍네.” “엄마, 아주 잘 됐다. 예수님이 엄마를 고쳐주신 거야.” “그런 것 같다.” 어머니의 치유사건을 통해 온 집안 식구가 교회에 출석하기 시작했다.

어느 날 동네 가정집에서 기도 모임이 있다는 소식이 들렸다. 당시 나는 친구들이 대학 생활을 할 때 아무것도 못 하고 실업자처럼 집에 있었다. 안수기도를 받으면 인생의 문제가 풀린다는 소문에 귀가 솔깃해졌다.

정리= 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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