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김재열 뉴욕센트럴교회 목사(7)교회 잔금 못치르자 ... 아내"아파트 팔자"

김재열목사(좌측)가 2013년 11월 아내 김숙희 사모와 함께 김명혁 강변교회 원로목사의 사무실을 찾았다. 


내가 사는 서울 강남구 청담동 삼익아파트가 막 입주하고 상가를 짓는 데 교회가 없었다. 김명혁 목사님과 함께 분양사무실로 달려갔다. 그리고 믿음으로 280㎡(85평)짜리 상가를 분양 계약했다. 잔금이 5800만원이었는데, 삼익아파트 한 채가 1200만원 하던 시절이었다.

가정예배를 드리는데 아내가 자꾸 울면서 이런 기도를 했다. “하나님, 우리는 이렇게 편하게 사는데 교회는 모일 장소가 없어서 죄송해요.” 듣다가 나도 마음의 감동이 일었다. “여보, 울 것 없어요. 우리 이 아파트를 건축헌금으로 드립시다.”

김명혁목사님 모시고 강변교회 시작
부교역자로 사역하다 산성교회 개척


1970~80년대만 해도 서울 시내 대형교회는 영락교회 다음이 충현교회였다. 고등학교 친구 부모님이 장로, 권사였는데 충현교회 건축을 할 때 집을 팔아서 건축하는 모습을 봤다. 그래서 그때 알았다. ‘아, 교회 건축은 원래 저렇게 하는구나.’

성도 중 한 분이 자기 집을 보증으로 잡히고 건축헌금을 드렸다. 여기저기서 돈을 끌어와 1980년 김명혁 목사님을 모시고 서울 강변교회가 시작됐다. 강변교회 부교역자로 사역하던 나는 합동신학교 4회 졸업을 하고 교회 개척을 놓고 기도를 시작했다. ‘내 스타일상 시골 목회는 아니다. 체질상 도시목회가 맞다.’

84년 서울 송파구 지하실에서 산성교회를 개척했다. 기도만 하면 수많은 양 떼와 소 떼를 보여주셨다. 폐병에 걸려 죽음의 위기까지 갔지만, 다시 살려주신 하나님의 역사가 주마등처럼 흘러갔다.

그때는 목회에 대한 불안조차 없었다. 주님이 하시는 역사였기 때문이다. 87년 60명이 출석할 때 2000명을 초청하는 전도대잔치를 열기로 했다. 날짜는 11월 20일부터 22일까지였다. 스티커를 수만 장 찍어서 집마다 붙였다. 조간과 석간신문에 전단을 삽입했다.

간증자로 지금은 목회자가 된 김신조씨와 연애인교회 서수남 집사, 전 국가대표선수 이영무 전도사를 초청했다. 그들을 간증자로 세우고 나는 15분짜리 짤막한 복음 메시지를 전하기로 했다.

드디어 디데이가 앞으로 다가왔다. ‘얼마나 교회로 올까.’ 전도 대잔치 날이 됐다. “두두두두.” 교회 사무실에 있는데 사람들의 발소리가 건물을 울렸다. 자그마치 1670명이 모였고 그중 결신자가 550명이나 됐다. 금세 출석 교인이 260명이 됐다. 지하실이 모자라 3층 상가를 추가로 얻었다.

하지만 여러 사람이 들어오다 보니 잡음이 컸다. 하루는 제직회를 하는데, 지하 예배당에 장의자를 놓는 게 어떻겠냐고 물었다. 그러자 한 성도가 손을 번쩍 들더니 반대 의사를 밝혔다.

“목사님, 우리는 큰 교회가 되는 게 싫어서 여기로 왔습니다. 교회 성장보다는 이름 없이 구제하고 전도하는 게 진짜 교회 모습 아니겠습니까.” 그들은 사사건건 나의 목회에 태클을 걸었다. 지금 와서 보니 구제라는 명목으로 자기들이 꿈꾸는 교회를 만들려 했던 것 같다.

정리=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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