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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소금-송세영] 일본의 양심, 도이 류이치



지난 22일은 일본의 목회자이자 정치인이었던 도이 류이치(土肥隆一) 목사 3주기 추도일이었다. 그는 중의원 7선 의원으로 중의원 외무위원장까지 지낸 유력 정치인이었지만 평생 세태와 타협하지 않고 용기 있게 바른 목소리를 냈다. 일본이 과거사를 반성함으로써만 한·일 양국의 진정한 화해가 가능하다는 게 그의 소신이었다. 어릴 적 조선인 초등학생이 일본어를 쓰지 않는다는 이유로 구타당하는 것을 보며 받았던 충격과 기독인으로서 신앙적 양심이 그의 정치적 신념을 뒷받침했다.

도이 목사는 1939년 2월 11일 조선총독부 관리의 아들로 서울 창신동에서 태어났다. 1945년 초등학교에 입학해 3개월 정도 다니곤 일본의 패망을 예견한 아버지와 함께 중국을 거쳐 일본으로 돌아갔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법관이 되라는 부모의 권유를 물리치고 도쿄신학대에 입학했다. 일본의 역사가 가해자의 역사임을 깨닫고 신학을 공부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미국에서 공부한 뒤 귀국해 도쿄와 오사카를 거쳐 고베에 교회를 세우고 정신지체장애인들을 위한 복지시설을 운영했다. 목회와 사회복지에 헌신하던 그를 높게 평가한 주위의 권유로 정치에 입문해 90년 2월 중의원 의원에 당선됐다.

97년 한일기독의원연맹 공동대표를 맡은 도이 목사는 98년과 2000년 ‘한·일 간 화해와 협력, 남북통일을 기원하는 PPP(부산 판문점 평양) 십자가 대행진’을 주도했다.

2011년 2월 당시 집권 민주당의 원내대표를 맡고 있던 도이 목사는 한일기독의원연맹의 일본 측 대표 자격으로 한국을 방문, ‘일본 정부는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지 마라’는 내용의 공동선언문에 서명했다. 일본 각료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반대, 사할린 동포와 위안부 문제 해결도 촉구했다.

이 사실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자 일본 야당과 우익은 도이 목사는 물론 민주당까지 집요하게 공격했다. 도이 목사는 결국 탈당을 해야 했고 2012년 총선 출마를 포기했다. 하지만 그는 탈당 후 기자회견에서도 “한·일 관계는 중요한 문제”라며 “굴하지 않고 일본과 한국의 막힌 담을 허물기 위해 힘쓰겠다”고 말했다.

3·1운동 100주년인 올해 한·일 관계가 최악을 향해 치닫고 있다. 일본의 초계기 도발이 직접적인 계기였지만 한국 정부의 위안부 합의 무효화,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 등도 배경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잘못된 것은 바로잡아야 하고 부당한 도발에는 당당히 맞서야 한다. 하지만 정치적 갈등이 한·일 관계 전반으로 번지는 것은 양국 모두에 바람직하지 않다. 일본의 군비 증강과 재무장의 명분으로 이용돼 동북아의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킬 수 있다.

그럼에도 일본 집권세력은 정치적 이해관계를 위해 이를 밀어붙일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혐한을 조장하는 극우세력이 이를 틈타 서유럽이나 미국에서처럼 득세할 수도 있다. 한·일 관계의 미래를 위해서는 동북아 평화 기류를 견고히 유지하면서 일본의 극우세력을 고립시킬 필요가 있다.

우리 정부도 외교적 노력을 다하겠지만 한계가 있다. 한·일 양국의 정치적 역학관계와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이다. 자칫 내리막길로 치달을 수 있는 한·일 관계에 제동기 역할을 할 수 있는 건 민간 협력과 교류다. 이미 한류 드라마나 K팝은 일본에서 민간 외교사절로서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아베 정부의 반한 정책, 극우의 혐한 캠페인에도 불구하고 젊은층을 중심으로 ‘정치는 정치, 문화는 문화’라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는 데는 한류의 영향이 크다고 한다.

한국교회도 일본교회와의 교류 협력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면 좋겠다. 한국은 일본 복음화를 위해 선교사를 파송하고 일본교회와 협력해 왔지만 최근에는 그 열기가 다소 식은 것 같다. 한반도 평화 기류가 조성되면서 북한과의 교류 협력과 한·미동맹에 많은 관심이 쏠린 것과 비교된다. 하지만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해서는 미국뿐 아니라 일본의 협력도 필요하다.

일본의 양심적인 교회와 크리스천들은 과거사를 참회하며 한국의 민주화와 인권운동을 지원해 왔다.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를 염원하며 일본의 군비 증강에 반대해 왔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도이 목사였다.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다양한 기념사업을 추진 중인 한국교회가 일본의 양심적 크리스천들과 더 폭넓게 교류하고 연대하길 바란다.

송세영 종교부장 sysoh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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