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유동부 (9) 결정적 증거 ‘예수 부활’로 확실한 믿음의 눈 열려

유동부 대표가 찾은 한 중학교 교과서 사회과 부도 속 ‘세계 연대표’에 BC 4년 ‘크리스트 탄생’이라고 적힌 모습(동그라미 안). 아래는 한 고등학교 세계사 교과서 속 ‘크리스트교의 성립과 전파’란 단원을 유 대표가 밑줄을 그어가며 읽었던 흔적.




중고 서점에서 중학교 교과서 사회과 부도를 구입해 펼쳐봤다. 책 속 ‘세계 연대표’에 우리나라는 삼국시대였던 BC4년 ‘유럽에서 크리스트(예수) 탄생’이라고 떡하니 적혀 있었다. 그때 알았다. 그동안 난 한 번도 자문해 본 적 없이, 무의식중에 예수님을 제우스나 피터 팬 같은 신화나 동화 속 인물로 인식하고 있었음을 말이다.

곧이어 펼쳐 본 고등학교 세계사 교과서의 중간쯤엔 ‘크리스트교의 성립과 전파’란 단원이 있었다. 예수라는 인물이 등장했을 때의 역사적 배경과 그의 죽음 그리고 그의 부활을 전하는 제자들에 의해 하나의 교파가 형성됐다는 내용이 나왔다. 313년엔 로마의 국교 중에 하나로 인정됐으며, 결국 392년엔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가 됐다는 내용도 있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털썩 주저앉아 한없이 울었다.

“아! 사도행전과 세계사는 따로가 아니라 하나였구나. 세계 역사를 사도행전이 설명해주고 있었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성경은 이스라엘의 역사책이었다.

난 나만의 신앙 피라미드에 갇혀 하나님이 주신 유일무이한 증거이자 역사적 사건인 ‘부활’을 붙잡지 못했다.

그제야 비로소 성경 요한복음 속 내용이 통째로 내 속에 들어왔다. 예수님이 행하신 수많은 기적을 보고, 직접 행하기도 했던 제자들은(눅 9:6) 결국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믿지 못하고 십자가 앞에서 모두 도망쳤다. 예수님은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다”며 “내가 하나님인 유일한 증거는 부활이다. 다른 종교에도 있는 이적과 표적 말고 그 어떤 신도 흉내 낼 수 없고 오직 창조주 하나님만 하실 수 있는 부활의 몸을 너희에게 보여 주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믿을 수 있는 확실한 길이 열리는 거야”라고 하신 것이다. 신념이 믿음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히 11:1)란 말씀처럼 믿음은 내가 정한 신앙생활의 기준에 도달했거나, 믿어야 한다는 필요나, 믿어진다는 당연함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사실과 증거 위에 세워져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난 지금까지 검증된 적 없는 윤회설을 믿는 불교도와 다를 바 없는 신념의 소유자였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부활을 통해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이 확증되니 십자가 사랑이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이 크게 다가왔다. 창조주 하나님이 나를 위해 돌아가셨다는 감당할 수 없는 사실 앞에 나는 그대로 고꾸라졌다. “하나님이 얼마나 나를 사랑하셨으면 나를 위해서 돌아가셨을까”하는 마음은 이전과 차원이 달랐다. 모래성처럼 쓰러지고 세워지고를 반복하던 나의 신앙은 부활이란 반석 위에 꼿꼿이 세워졌다. 2001년 이후 20년이 지난 지금도 춘천한마음교회 김성로 목사님은 부활을 선포하고 계신다.

정리=임보혁 기자 bosse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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