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유동부 (11) 언제나 주님 사랑으로 품어준 목사님과 교회공동체

유동부 대표와 그의 아들 태정씨가 강원도 춘천시의 유동부치아바타 매장에 적힌 ‘부활’ 문구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다. 태정씨는 현재 유동부치아바타에서 생산팀장으로 재직 중이다.


사업의 실패 등 부침을 겪으며 춘천한마음교회 김성로 목사님과 교회 공동체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그들은 내가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언제나 힘을 주며 예수님의 사랑으로 날 품어줬다.

2004년 제과점 사업이 부도가 났을 때도 교회 공동체는 내 어려움을 보고만 있지 않았다.

상한 마음을 안고 참석한 어느 예배 시간이었다. 김 목사님은 설교 중에 “유동부 형제가 저렇게 망했는데 우리가 100만원씩만 모아줍시다. 우선 살려 놓고 잘 되면 받고, 안 되면 할 수 없고…”라고 말씀하셨다. 당시 난 교회 내 작은 카페에서 조각 케이크와 우유를 팔고 있었는데 교인들이 정말 많이 도와주셨다. 그 덕에 다시 일어설 힘을 얻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나 2014년 3월 마지막 7번째 사업마저 실패했다. 이젠 더는 재기가 불가능하다고 할 정도로 사업도 나도 망가졌다. 당시 경기도 성남시에서 장애를 지닌 초등학교 아이들을 돌보는 보조교사로 일하던 아내와도 불화가 생겨 별거에 들어갔다. 가정까지 파탄 난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당시 해병대에 자원입대했던 아들이 입대한 지 8개월 만에 이름도 낯선 흉선암에 걸렸다는 소식까지 듣게 됐다. 운동을 좋아해 체육대학교에 진학했던, 누구보다 건강했던 아이였는데 말이다. 그 소식을 듣고도 난 마치 남의 일인 것처럼 평소대로 내가 해야 할 일만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땐 ‘희로애락’이란 인간의 기초 감정조차 전혀 느끼지 못할 정도로 영·혼·육이 피폐해져 있었다.

마지막 사업을 완전히 접고 오갈 데가 없는 난 춘천한마음교회로 향했다. 마침 주머니를 뒤져보니 수중에 남은 돈은 3만6000원이 전부였다. 몰골도 사람 몰골이 아녔다고 볼 정도로 말이 아니었다. 예전 같았으면 예배를 마치자마자 차가 막힐까 부리나케 집으로 향했을 텐데 그러질 못하고 괜히 교회 건물 앞 개집 주변만 서성대고 있었다. 김 목사님께서 이런 날 보시며 집에 왜 안 가냐고 물으셨다. 하지만 도저히 목사님께 또다시 사업이 망했다는 말씀을 드릴 면목이 없었다. 그저 “하던 일이 뭐 좀…”하며 난 얼버무렸고, 목사님은 단번에 내 사정을 알아채셨다. 그날 저녁부터 목사님께선 한 달 반 동안 점심, 저녁 할 것 없이 춘천의 맛집이란 곳은 다 데리고 다니시며 밥을 사주셨다.

마침 아들도 의병 제대한 후 암 수술을 받고 방사선 치료를 시작했다. 김 목사님께선 그런 우리 부자가 공기가 좋은 곳에서 지낼 수 있게는 해줘야겠단 생각에 교회 생활관에 머물 수 있도록 배려해주셨다.

어느 날은 김 목사님께서 날 춘천시 구봉산에 있는 한 멋진 카페에 데리고 가주셨다. 차를 사주시며 여러 좋은 말씀을 해주시던 목사님은 내게 “동부야, 너를 기쁘게 해주고 싶다”라고 말씀하셨다. 당시 난 그저 “네”라고 대답했지만, 마음에 와닿지는 않았다. 하지만 1년, 2년 시간이 지나며 그 말씀이 내 머리에 맴돌았다. 그리고 점점 가슴을 파고들었다.

정리=임보혁 기자 bossem@kmib.co.kr
 
트위터 페이스북 구글플러스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