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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승민의 사이언스&테크놀로지] 인공지능과 로봇의 만남, ‘4차 산업혁명’ 미래를 바꾼다



미국 팜와이즈사가 개발한 잡초제거 로봇.


로보티즈의 실내배송로봇 '집개미'.


병원에는 ‘약제 배달’이라는 업무가 있다. 약을 관리하는 ‘약제과’에서 환자 진료와 치료에 필요한 약물을 보내주는 일이다. 단순할 것 같지만 전문인력의 관리가 꼭 필요하다. 일부 약품은 독성이나 마약 성분이 있는 것도 있고, 어떤 약은 주사제 하나에 수백만원을 호가한다. 그런데 국내 한 병원이 이 업무를 로봇에 맡겨 화제가 됐다. LG전자가 개발한 배송용 로봇 ‘클로이 서브봇’에 필요한 통신 기능과 프로그램을 설치해 만들었다. 이 로봇은 인공지능을 통해 약제과에서 보내는 약이 몇 층, 몇 병동으로 가야 하는지 정확히 인지하고 움직인다. 전용 통신 기능을 이용해 엘리베이터로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어 건물 내 어디든 갈 수 있다.

LG전자가 이 로봇을 실생활에 투입한 것은 지난 4월이 처음이다. 서울 강서구 LG사이언스파크에서 건물 내 편의점 물품의 ‘건물 내 배송서비스’를 시작한 것이 시초다. 같은 건물 고객이 편의점에 스마트폰으로 주문을 넣으면 로봇으로 배송해 주는 식이다. 이후 5월엔 강남구 역삼동 GS타워 1층 편의점 물품의 배송서비스를 시작하는 등 기업과 기관이 연이어 도입하고 있다.

흔히 4차 산업혁명을 이야기할 때 인공지능을 가장 중요한 요소로 꼽는다. 인공지능만 발전하면 세상이 곧 크게 좋아질 것이라는 이야기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 건 이미 오래된 이야기다. 현시대에 인공지능을 빼고 미래를 이야기할 수 없다는 데 이견이 있긴 어렵지만 중요한 조건 하나를 간과하는 경향이 있다. 인공지능은 그 자체로는 현실세계에서 힘을 펼 방법이 없다는 사실이다. 물건을 만지고, 옮기고, 먼 곳까지 이동하려면 반드시 신체가 필요하다. 그 유일한 수단을 세상에선 로봇이라고 부른다.

인공지능 로봇, 이미 현실서 활약 중

현실 사회에서 로봇이 활약하려면 상황을 종합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과거 기술로 턱없이 부족했던 이 문제에 실마리를 제시한 것이 인공지능이다. 최근 들어 빠르게 실용화되고 있는 로봇 중 인공지능이 도입되지 않은 것은 찾기 어렵다. 급속도로 발전하기 시작한 인공지능이 로봇 기술과 만나며 현실 사회의 모습이 큰 폭으로 변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대표적인 분야는 농업이다. 국내에선 다소 생소하지만 미국 등 대규모 농업을 하는 국가에서 로봇은 이미 생활이 됐다. 미국 회사 ‘팜와이즈’는 제초작업용 로봇의 임대사업을 하고 있다. 밭을 오고가며 카메라로 농작물을 살펴본 다음 호미처럼 생긴 도구를 뻗어 잡초만을 골라 뽑아내는 로봇을 이용, 농장 검사 및 제초 시 1에이커(약 4046㎡)에 200달러(약 23만7000원)를 받고 있다. 경쟁사로 꼽히는 ‘카본 로보틱스’가 내놓은 로봇은 인공지능으로 밭의 잡초를 식별한 뒤 호미가 아니라 레이저 열로 태워 없애는 형태다. 미국 기업 ‘퓨처 에이커’가 만든 농사 지원 로봇 ‘캐리’는 이름 그대로 사람 대신 수확한 농작물 등을 옮겨준다. 최대 500파운드(약 227㎏)의 작물을 싣고 자율적으로 운행하는데, 인공지능과 컴퓨터 화상해석기술을 이용해 나무나 사람 등 장애물을 피해 이동한다.

비슷한 사례는 다양한 분야에 수없이 볼 수 있다. 미국에선 도미노피자가 작은 승용차 크기의 자율주행 로봇 ‘뉴로 R2’를 이용해 지난 4월부터 실제로 배달서비스를 시작했다. 피자를 스마트폰으로 주문하면 차량 잠금장치를 해제할 수 있는 고유 번호를 받을 수 있는데, 차량이 주소지에 도착하면 고객이 문 앞에서 잠금을 해제하고 피자를 꺼내오는 방식이다. 국내에선 배달 전문기업 ‘우아한형제들’이나 로봇 플랫폼 기업 ‘로보티즈’ 등의 업체가 유사한 배달 로봇의 실용화를 준비 중이다. 로보티즈는 LG의 클로이 서브봇과 비슷한 형태의 인공지능 기반 실내 배송 로봇 ‘집개미’의 본격적인 상용화에 나선다고 지난 4일 밝히기도 했다. 이 로봇은 로봇팔로 직접 엘리베이터 버튼을 작동하는 것은 물론 객실 문도 두드릴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로봇 개발자들은 최근 로봇 기술의 급속한 실용화 원인을 인공지능에서 찾는다. 한재권 한양대 로봇공학과 교수는 “로봇 실용화의 최대 걸림돌인 판단력 문제를 인공지능을 통해 해결하게 된 것”이라며 “로봇과 인공지능이 융합해 우리 생활에서 가성비 높게 쓰여지고, 새로운 로봇이 산업화되는 시간표 역시 점점 빨라지고 있다”고 했다.

기존에 실용화된 형태의 로봇들도 인공지능을 만나 성능이 부쩍 높아지고 있다. 삼성전자의 신형 로봇청소기 제트봇 AI는 인공지능 학습을 기반으로 100만장 이상의 이미지를 사전에 학습해 주요 장애물과 가전제품, 가구 등을 인식하고 가장 안전하고 효율적인 경로를 따라 집안을 청소한다.

산업의 변화 인공지능+로봇이 주도

로봇과 인공지능의 접목은 로봇의 주 무대였던 산업현장에도 새로운 혁신을 불어넣고 있다. 정확한 시간에 정확한 위치까지 움직이는 ‘위치제어식’ 로봇은 지금까지 산업현장의 효율을 높이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문제는 이런 방식이 인간과 함께 일할 때는 쓸모가 거의 없다는 사실이다. 갑자기 나타난 사람을 로봇이 인지하지 못하면 사고나 오작동으로 연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공장에서 로봇이 일하는 곳은 철저히 사람의 출입이 금지됐다. 이 문제 역시 인공지능 로봇 기술이 도입되면서 크게 변화했다. 사람이 주변에 있는지 인공지능으로 판단하고 사람과 함께 일할 수 있는 로봇, 이른바 ‘협동로봇’이 등장하며 모든 산업현장 곳곳에 로봇이 투입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로봇의 실용화가 생활의 편리함을 넘어 산업 혁신의 토대가 된다는 점에서 미래 사회를 바꿀 실질적 힘이 되고 있다고 설명한다. 인공지능과 기계장치가 융합되며 노동력으로서 가치가 생기고, 이런 점이 차세대 산업을 이끌 근간이 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국내 최초의 근력강화로봇 개발업체 ‘FRT’의 장재호 대표는 “인공지능은 상용화 체계가 잡혀 있어 로봇에 적용하는 것이 이미 어렵지 않게 됐다”면서 “앞으로 보다 많은 인공지능 학습 데이터를 보유한 업체가 경쟁력을 갖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과학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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