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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영옥의 컬처 아이] 중국은 세계유산 가리는 호텔 잘랐는데



조선왕릉은 조선 518년간의 제례 문화는 물론 건축물과 조각, 풍수적 자연관이 녹아 있는 문화유산이다. 죽음의 공간이면서 그 시대의 통치 철학과 사상, 과학과 문화를 아우른 한국 특유의 정신 유산이라는 점이 인정돼 2009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지정됐다.

그런 조선왕릉이 40여기 왕릉 가운데 하나인 김포 장릉을 절벽처럼 가리는 이른바 ‘김포 장릉 뷰 아파트’ 건설 문제로 세계유산목록에서 해제될 위기에 놓였다. 유네스코는 그 가치가 소실된 경우 망설이지 않고 세계유산목록에서 지운다. 영국의 경우 2004년 세계유산에 등재시킨 리버풀 항구가 지난해 세계유산목록에서 삭제되는 수모를 당했다. 독일의 드레스덴 엘베계곡도 추후 계곡에 다리가 건설되면서 19세기 조성된 건축물과 강변이 조화를 이루는 본래 가치가 훼손되자 2009년 세계유산에서 해제됐다. 한국이 보유한 14점 세계유산 중 하나인 조선왕릉도 이번 사태를 해결하지 못할 경우 그런 수모를 겪을 공산은 커 보인다.

이번 사태는 인천 검단신도시에 대광건설, 대광건영(시행사 대광이엔씨), 금성백조(시행사 제이에스글로벌) 등 3개 건설사가 장릉을 가리는 초고층 아파트를 지으며 시작됐다. 문화재청은 문화재보호법 위반으로 건설사들을 고발했고, 건설사들은 문화재위원회의 중재(개선안)를 최종 거부하며 법적 해결 방식을 택했다. 2심 법원은 가처분 소송에서 건설사의 손을 들어줘 아파트 공사는 진행 중에 있고 문화재청은 즉각 재항고했다.

문화재청 자문기구인 문화재위원회는 중재안으로 건설사별로 꼭대기 4∼10개 층을 잘라낼 것을 제안한 바 있다. 시뮬레이션 용역 결과 “상층부 해체는 가능한 것으로 판단된다”는 답을 얻었다. 세계유산을 보존하기 위해 토건 이익을 양보한 사례가 해외에는 있다. 중국 항저우 시후(西湖)의 경우 2011년 등재 당시 7층 높이의 상그리아 호텔이 경관을 훼손하고 있는 것으로 지적받자 유네스코 권고에 따라 2019년 호텔 상부 2개 층을 철거했다.

“콘크리트 아파트는 한번 지어도 40년의 연한에 그치지만 세계유산은 인류가 수백년간 쌓아온 결과물이지 않나.” 세계유산 등재를 위해 민간에서 일해 온 이창환 상지대 교수는 중국의 결정을 두고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중국이 해낸 일을 못하고 있다.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지루한 법정 공방을 벌이게 됐다. 시뮬레이션에 따르면 3개 건설사가 지은 아파트 3401가구에서 209가구는 줄여야 한다. 법정 다툼은 사태 해결까지 5, 6년은 간다. 그사이 입주를 못하게 될 주민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물론 건설사들의 행태에 문제가 있긴 하다. 건설사들은 사업시행자인 인천도시공사가 2014년 해당 아파트와 관련해 문화재보호법상 ‘현상변경 허가’를 받았고 자신들은 이를 승계해 적법하게 아파트를 지었다고 주장한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인천도시공사는 택지에 대해서만 허가를 받았을 뿐 건축에 대해서는 허가를 받지 않았다”고 반박한다.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 황평우 소장도 “국토교통부가 2015년 ‘인천검단지구 택지개발 지구단위계획’을 냈다. 이를 금과옥조로 여기는 건설사들이 장릉의 경관을 가려서는 안 된다는 걸 모른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했다.

그런데 이 교수는 국토부와 인천시의 공동 책임론을 주장한다. 전적으로 건설사 잘못으로만 전가하기에는 정책 입안에서부터 문제의 소지가 있었다는 지적이다. 그는 “국토부는 장릉이 바라보이는 위치에 검단신도시를 지정했고, 인천시는 공원 등으로 조성해도 좋을 지역을 고층 아파트가 가능한 지역으로 설정했다”며 “문화재청과 건설사에만 맡기지 말고 국토부와 지자체도 함께 대안 마련에 나서야 한다”고 했다. 우리는 문화 선진국 도약을 가름하는 시험대에 올랐다. 지혜를 모았으면 한다.

손영옥 문화전문기자 겸 논설위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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