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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사초롱] 누구를 위한 군대인가



‘수호전’ 등장인물 임충은 자타가 공인하는 80만 금군의 창봉교두다. 금군은 군주를 호위하는 부대, 창봉교두는 창술과 봉술을 가르치는 교관이다. 전체 군대의 규모가 얼마나 되기에 금군 수만 80만인가? 호위부대치고 지나치게 많은 것 아닌가? 이 질문에 답하려면 금군의 개념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태초의 군대는 군주의 권력을 수호하기 위해 탄생했다. 구성원의 안위는 관심 밖이었다. 군주는 구성원을 모조리 희생해서라도 지켜야 하는 절대적 존재였다. 전근대의 군대는 국민의 군대가 아니라 군주의 군대였다. 이것이 전근대 동아시아 국가에서 군주의 호위부대, 금군이 비대했던 이유다.

조선의 군대 역시 금군 조직이 기형적으로 비대했다. 조선 군대는 중앙군과 지방군으로 나뉜다. 중앙군은 군주를 호위하고 도성을 수비하며, 지방군은 변방의 경비를 담당한다. 금군의 개념을 좁게 해석하면 중앙군 중에서도 국왕을 지근거리에서 경호하는 내금위, 겸사복, 우림위 정도만 해당하겠으나, 넓게 해석하면 중앙군 전체가 금군이다. 중앙군은 오군영이라는 다섯 조직으로 구성됐으며 비교적 정예부대에 속한다. 반면 각 지방의 병영과 군진에 속한 지방군은 숫자만 많을 뿐 오합지졸이다. 그 숫자조차 장부상 숫자에 불과하니 군대 역할을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조선 군대의 주축은 금군이었다.

전쟁이 일어나면 금군으론 역부족이니 각지에서 의병이 일어났다. 의병 역시 국왕을 지킨다는 ‘근왕(勤王)’을 명분으로 내세웠다. 의병에 가담한 백성은 외적에게서 가족과 이웃을 지키려는 생각이었겠지만, 사대부인 의병장은 달랐다. 그들이 걱정한 건 오로지 군주의 안위였다. 군주를 어버이처럼 친애하고, 전쟁이 일어나면 목숨을 바쳐서라도 지켜야 한다는 ‘친상사장(親上死長)’ 관념이 그들을 전쟁터로 이끌었다. 그들에게는 국가와 국민을 지킨다는 관념이 희박했다. 종묘사직을 지킨다는 명분을 내세우기도 했지만 이는 지금의 국가 개념과 다르다. 왕가(王家)로 이해하는 것이 실상에 가깝다. 조선 군대는 국민을 위한 조직이 아니라 국왕을 위한 조직이었다.

군대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조직이라는 관념은 근대 국민국가의 산물이다. 근대 국민국가의 군대는 통치자를 수호하는 조직이 아니다. 법률과 사회적 합의에 바탕해 폭력을 독점함으로써 사회 질서를 유지하고 국가 간 분쟁에 대응하는 조직이다. 이를 위해 근대 국민국가는 거대한 규모의 상비군을 유지했다. 상비군 유지를 위한 징병과 징세는 국민의 군대라는 명분으로 정당화했다. 오늘날 민주국가의 군대 역시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조직이다. 군대가 본연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다면 국민은 군대를 존중하고 지지하는 것이 마땅하다.

군인을 조롱한 여고생의 위문편지가 논란이다. 일각에선 위문편지가 일제의 잔재라고 하지만 그렇지 않다. 일제 강점기와 근대로의 이행 시기가 겹쳤기에 그리 보이는 것뿐이다. 위문편지는 군인 사기 진작과 국민 안보 교육을 위한 근대 국민국가의 산물이며, 지금도 여러 나라에서 활용하고 있다. 다소 진부한 방식이고 보내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나 별 의미가 없다는 사실은 인정한다. 그렇다고 철부지의 어리석은 행동을 두둔하고 옹호하는 건 남녀 갈등을 부채질할 뿐이다. ‘미성년 여고생이 성인 남성 군인을 위로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발언까지 나왔다. 과연 남녀칠세부동석의 나라다운 발상이다. 국방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군인의 역할을 존중하는 데도 남녀노소를 구분하는가. 강제성이 문제라면 강제성 봉사 활동 전부가 문제다. 이번 소동은 위문편지의 문제가 아니다. 군대의 존재와 역할에 관한 인식의 문제다.

장유승(단국대 연구교수·동양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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