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이건숙 (26) 이제 겨우 살만한데… 교수직 버리고 목회 결심한 남편

소설가 이건숙(가운데) 사모가 2004년 남편 신성종(오른쪽) 목사와 교회 수련회에서 피에로와 함께 서 있다.


남편 신성종 목사는 늦은 나이에 안수를 받고 충현교회 대학부를 인도하다가 사임했다. 명지대 교수 겸 대학교회 목회를 했다. 두 가지 사역 모두 전임이라 드디어 강단 위에서 쓰러지는 사건이 나고 하나님은 그제야 귀국할 적에 원했던 그 신학교로 보냈다. 거기서 부교수를 거처 정교수가 되고 대학원장이 되었다. 시동생들도 자립하고 이제 시부모님만 남아 숨통이 트이는데 남편은 갑자기 학교를 버리고 목회를 하겠다는 결심을 했다. 나도 어느 정도 안정을 하고 서강대와 서울여대 등에서 도서관학을 강의하고 있었다. 나는 요번에는 못 따라가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이제야 겨우 삶의 궤도에 올랐는데 목회라니! 남편은 어찌나 고집이 센지 본인이 결정한 일은 막무가내로 밀고 나갔다.

“신학교에 있다가는 나는 숨을 쉴 수가 없어. 정치판이야. 사회의 정치도 식상한데 여기도 마찬가지야. 차라리 목회를 하면서 영혼을 구하는 일이 하나님이 내게 명한 일이야.”

나는 반기를 들었다.

“그간 고생한 식구들도 생각하셔요. 큰애가 지금 고3이니 대학을 가야 하고 작은 애도 고2니 가장 중요한 시기에 처한 아이들을 버리고 어떻게 대전으로 간다고 해요.”

아이들은 하나님께서 다 키워주신다는 주장을 했다. 목사인 남편이 주장하는 것이 하나님의 일로 여겨 감히 내가 막을 수 없었다. 거기서부터 시작된 목회는 온전히 하나님의 손에 쥐어진 삶이었다.

마흔이 넘어 나는 사모의 자리에 서니 전부 이상하게 보였다. 더구나 문제 있는 곳이라고 떠들썩하게 소문난 교회로, 목사 장로 교인들이 육탄전을 벌이다가 재판정까지 가서 판결문을 교회 입구에 붙여놓은 그런 교회였다. 우리 부부의 고생은 여태 살아온 삶보다 더 힘들었다. 이 경험은 내가 최근에 펴낸 장편 ‘예주의 성 이야기’에서 일부 소설화했다.

거기서 목회하면서 월간목회에 연재한 사모 핸드북 ‘사모가 선 자리는 아름답다’는 많은 사모와 신학생들 그리고 성도들에게 길잡이로 읽힌 책이다. 싸우고 나간 사람들이 주일마다 와서 학생들을 버스로 태워가는 바람에 따라가지 못하는 영아들을 모아놓고 영아부를 시작했다. 부모교육을 매주 했는데 아이들을 맡겨놓고 하는 수업이라 손자를 보러온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참석해 만원이었다. 여기서 강의한 내용이 홍성사에서 ‘엄마, 난 하나님의 선물이에요’로 출간, 이 책도 영아부가 많은 교회에 길잡이 교재로 사용됐다.

그뿐인가. 월간목회에 연재된 40대 사모로서 겪었던 ‘꼴찌의 간증’이란 수필도 홍성사에서 출판, 지금도 목사들을 만나면 회자되기도 한다. 다홍치마 적부터 사모가 된 분들이 느끼지 못하는 것을 나는 마흔이 넘어 소설가가 되어 써 내려갔다. 그 외에 월간목회 연재 출판물은 ‘이런 때 성도는 어떻게 말할까’와 ‘이런 때 사모는 어떻게 말할까’가 있다. 교회 안에 난무하는 상처 주는 말들을 성화시키는 대화법을 썼다. 그렇게 목회 현장에서 소설이 아닌 산문을 쓰다가 10년 세월이 흐른 뒤에 나는 모든 걸 털어내고 본격적인 소설 쓰기로 돌아섰다.

정리=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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