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이건숙 (27) 목회 현장서 얻은 소중한 글감, 소설로 다시 태어나

소설가 이건숙(왼쪽 두 번째) 사모가 2000년 남편 신성종(왼쪽) 목사 및 친정어머니(왼쪽 세 번째)와 미국 LA에서 기념촬영을 했다.


남편과 목회하는 동안 기독교 전래 100여년 역사에 켜켜이 스며있는 인물들이 소설 글감으로 넘쳐났다. 목회 현장에서 교인들이 전해주는 선조들의 신앙 이야기를 짧은 스마트 소설 형식으로 월간 새가정에 ‘민초들의 이야기’ 제목으로 연재했다. 세월 속에 살아오고 있는 이들의 믿음은 반드시 남겨야 할 글감들이었다. 나는 심방을 가면 그 집안의 선조들 이야기를 들으려고 귀를 세웠다. 그들은 신이 나서 풀어놓는 통에 사랑과 소통의 줄이 탱탱하게 당겨져 성도들과의 관계가 더 돈독하고 깊어졌다.

대전 목회에서 가장 나를 힘들게 했던 사건은 작은아들의 발병이었다. 머리가 좋고 다재다능하게 태어난 아들은 우리의 멀고도 험한 좁은 길을 따라오면서 드디어 병으로 쓰러져 버렸다. 우리 부부는 사탄과의 최전선에 나설 어느 정도의 준비가 되어있었지만, 막내아들은 유리 어항 속 삶을 견디질 못했다. 이 아들의 투병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이런 고난으로 점철된 남편의 목회와 아들의 병을 씨줄과 날줄로 엮어 월간 창조문예에 ‘멀고도 험한 좁은 길’로 연재했다. 일부 자전적 소설이라 출판을 꺼리다 결국 ‘예주의 성 이야기’란 제목으로 펴냈다. 그 책을 읽은 독자들은 다른 소설보다 영성이 깊어 감동을 받았다고 전화를 하면서 흐느끼기도 한다.

남편 신성종 목사가 서울 충현교회를 거쳐 다시 미국으로 태평양을 건너 목회지를 LA로 옮기는 날 친정어머니는 울부짖었다. 지금도 이따금 귀청을 찢는 친정어머니의 통곡이 비가 오는 날이나 우울할 적에 아직도 나를 힘들게 한다.

“기막히게 고생하며 자라고 키워낸 이 귀한 싹을 어떻게 이렇게 무참하게 짓밟아 뭉갤 수가 있는가! 이건 아니다. 너무 잔인하다. 목사와 신학자로 서기까지의 세월이 가슴 아프다.”

그런 장모를 향해 신 목사는 이렇게 말했다.

“이 교회를 향해 돌을 던지지 말라고 하나님이 제게 명하셨어요. 저를 하나님이 강제로 이 교회에서 빼내셨다고요. 제가 미국으로 가는 것은 교회를 보호하기 위해서입니다.”

이것은 대형교회인 충현교회가 아들에게 목사직을 세습하는 효시가 되었다. 그래도 감사할 일이 많다. 조용기 목사님은 빈손으로 나온 우리 가정을 위해 기도하고 위로하는 전화를 미국까지 해주셨고 옥한흠 목사님은 당분간 살라고 생활비까지 주셨다. 하용조 목사님과 이형기 사모님께도 늘 감사하다. 특히 이 사모님의 사랑은 잊을 수 없다. 수없이 전화로 기도해주셨던 김상복 목사님과 이재철 목사님, 특히 일주일이나 단식하며 우리 가정을 위해 기도해주시고 시부모 병원비에 더해 2년간 우리를 보살폈던 기독교선교횃불재단의 이형자 권사님께도 늘 감사하다.

다른 좋은 목회지가 나왔는데도 남편은 자신의 신념을 따라 고생 많은 미국 LA 목회를 시작했다. 하나님은 문제 있는 교회만 골라 병든 교회에 마지막 카드로 그를 배치했다. 참으로 험난하고 특이한 소명이었다. 이민 목회는 남의 땅에서 살아가는 상처투성이 이민자들을 돌보는 목회다. 삶의 굴곡이 아주 심해서 저들이 끌어내리는 밑바닥까지 그들의 원초적인 몸부림을 접하는 생활이었다.

정리=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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