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이건숙 (30·끝) 주님이 명한 내 소명은 성경과 문학 사이 다리 놓는 것

소설가 이건숙(앞줄 오른쪽 세 번째) 사모가 2018년 크리스천문학나무에서 등단한 작가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다음 시는 내 아들이 아버지 신성종 목사를 어떻게 보았는지 쓴 글이다. 제목은 ‘아버지가 숨겨놓은 리어카’이다.

‘내 앞에서는/ 항상 새 양복을 입으시던 아버지/ 용돈을 왜 이리 많이 주시나/ 아버지께 물어도 대답이 없으시네./ “아버지 부자 상자를 가지셨지요?”/ 말없이 헤어진 아버지를/ 어느 날 길에서 보았네./ 흙 묻은 헌 옷차림으로/ 붕어빵 장사를 하시는 아버지/ 내 앞에서 나쁜 사람이 리어카를 엎어버렸네./ 아버지는 그걸 세워놓으시고 무법자에게 비시네./ 내일도 나의 아버지는 새 양복을 입으시고/ 부자 상자를 가지신 듯 용돈을 주시겠네.’

시란 상징성을 띠고 비유와 환유하며 쓰는 것인데 아들의 눈에 비친 목사 아버지의 고통을 이해한 시라 나는 이 시를 읽으면 만감이 교차한다. 아버지는 양복을 입고 아들과 성도들 앞에 언제나 의젓하게 서서 모두 앞에 지극히 겸손하고 사랑이 넘치는 평안한 얼굴로 우뚝 서 있지만 속으로 앓는다. 아들은 철들어 아버지의 속앓이를 꿰뚫어 보았다. 따지고 보면 목사의 자녀들은 숨 막히는 자리임이 분명하다. 부모를 따라 사탄과의 최전선에 임해야 하니 말이다. 처음 목회지로 나설 적에 작은아들은 이렇게 절규했다.

“아빠! 목사 하지 말자. 그냥 교수로 지낼 수 없어? 아빠가 목사가 되면 난 동물원 원숭이 꼴이 된단 말이야. 제발 그냥 교수 하자.”

뒤돌아보면 아픈 상처들이 내가 걸어온 멀고도 험한 좁은 길에 흔적을 남기고 있다. 이제 내 등에 주렁주렁 매달렸던 무거운 짐들이 다 떨어져 나가서 날고프지만, 날개가 휘어서 멀리 높게 날 수가 없다.

하지만 문학이란 엄청난 바다를 앞에 놓고 나는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내 손을 잡아끌어 펜을 쥐여주면서 글을 쓰게 하신 하나님의 놀라운 소명에 글쓰기 전 묵상기도를 할 적마다 눈물이 난다. 아마도 펜이 내 손에 없었다면 나는 거친 풍파에 벌써 쓰러졌을 것이다. 글을 쓰면서 위로받았고 치유되었고 힘을 얻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하나님의 문화를 넓혀간다는 소명감에 보람을 느낀다. 결국 하나님이 명한 내 소명은 성경과 문학 사이에 다리를 놓아 하나님의 문화를 확장하며 저들의 가치관을 변하게 하는 일이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 나오는 ‘카르페 디엠’을 외치며 죽음을 앞둔 나이에 내가 하고픈 일을 하리라. 읽고 싶었던 책들을 맘껏 읽고 계속 글을 쓰고 깊이 있게 사색하리라.

남편의 신학교 동기동창 목사님이 최근 동창회에서 모두의 수고를 위해 낭독한 시로 ‘역경의 열매’ 기고를 마무리한다. 조미하 시인의 ‘멋진 당신의 인생’이다.

‘폭설이 내린 머리에는/ 머리카락보다/ 많은 사연이 있고/ 주름이 깊은 이마에는/ 고뇌하며 견딘/ 세월의 흔적이 있고/ 휘어진 허리는/ 알차게 살았다는/ 인생의 징표인데/ 그 값진 삶을 산 당신에게/ 누가 함부로 말하겠는가/ 남은 삶은 짧아도/ 그 깊은 삶의 무게를 누가 가볍다 하겠는가/ 당신이 남긴 수많은 발자국/ 그 값진 인생은/ 박수받아 마땅하지 않은가/ 꿈이 있는 한 나이는 없다/ 멋진 당신의 인생이기 때문이다.’

정리=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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