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황성주 (3) ‘고통의 심연’을 ‘아름다운 호수’로 만들어주신 하나님

황성주 회장 부부(앞줄)가 2002년 미국 워싱턴 한빛지구촌교회에서 목사 안수식 후 어머니(뒷줄 맨 왼쪽)를 모시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어머니, 이름을 부를수록 그 포근함이 뭉게구름처럼 피어오른다. 어머니는 할머니의 반대로 사범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평범한 주부로 아쉬운 일생을 사신 분이다. 아버지와의 불화로 난무하는 폭력과 폭언 등 평생을 고통 속에서 사셨다. 처절한 고통을 때로는 인내로, 때로는 임기응변으로 극복하셨지만 가슴속에 맺힌 것이 무척 많으신 분이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일이다. 그때는 방과 후에 학교 도서실에서 밤 11시30분까지 공부를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래서 대부분의 아이가 점심과 저녁 도시락까지 싸서 왔는데, 나만은 예외였다. 저녁이 되면 하루도 빠짐없이 4㎞ 길을 걸어서 어머니가 손수 찬합에 따끈한 밥과 반찬, 국물을 담아서 찾아오셨다. 그 정성과 사랑에 나는 그저 고개가 숙여질 뿐이다. 그래서 나는 어머니에 대한 애착이 강했고 어머니의 고통과 슬픔에 나를 동일시하는 내면세계를 가지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지금도 나는 어린 시절 내 영혼에 구멍을 뚫어버린 어머니의 슬픈 얼굴을 잊지 못한다. 다섯 살 때 일이다. 어머니를 마구 때리면서 피 흘리는 어머니의 머리채를 잡아끌고 다니던 아버지의 모습과 교차하는 생생한 기억이다. 그 충격은 일생일대의 트라우마가 되어 처절한 상처를 안겨주었고, 청소년 시절 내내 ‘고통의 심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무력감을 경험하게 되었다. 어머니는 ‘고난받는 여인상’의 전형으로 극단적인 가정폭력의 희생자였다. 항상 슬픈 얼굴이지만 자녀들에게 모든 것을 쏟아붓고 훌륭하게 키운 기품 있는 얼굴이기도 하다.

캠퍼스 복음화에 헌신하던 때의 일이다. 그 당시 나는 서울대 관악캠퍼스 버들골에서 주님과 나만의 시간을 누리며 산책하는 습관이 있었다. 거기에는 평소에 못마땅하게 여기던 큰 웅덩이가 있었다. 푸른 하늘과 녹색 잔디가 펼쳐져 있는 자연의 조화에 어울리지 않게 움푹 파인 그 웅덩이는 볼 때마다 나의 기분을 상하게 했다.

그런데 비바람이 몰아친 어느날 아침 산책을 하다 놀라운 장면을 보게 됐다. 짧은 시간의 집중호우에 그 큰 웅덩이가 아름다운 호수로 변해 있는 것이 아닌가. 오랫동안의 안타까움이 탄성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웅덩이를 호수로 변화시키시는 하나님, 그 장면은 고통을 겪을 때마다 내 일생을 반전시키는 데자뷔가 됐다. 하나님은 그처럼 움푹 패 있는 내 ‘고통의 심연’을 아름다운 호수로 만들어 주신 것이다. 처절한 고통과 상처의 웅덩이에 쏟아 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 그 상징적 사건은 미래를 통해 계속해서 펼쳐졌다.

이후 나는 대학 1학년 때 한국대학생선교회(CCC)를 통해 주님을 만났다. 고통의 심연에 복음의 샘이 터지고 은혜의 강이 흐르기 시작했다. 얼마나 큰 은혜를 받았던지 복음을 받아들인 지 한달 만에 13명의 학생들을 전도해 성경을 가르치고 있었다. 그 폭발적인 은혜 이후 46년 동안 달려온 복음의 열정, 상처받은 얼굴들과 암 환우들을 향한 사랑, 매일처럼 세계를 누볐던 사랑의 혁명운동 열망! 그것은 바로 ‘고통의 심연’에 쏟아부은 하나님의 조건없는 사랑이 평생을 달릴 수 있는 불굴의 에너지로 변환된 것이었다. 이것이 내가 체험한 은혜의 해부학이다.

정리=윤중식 종교기획위원 yunj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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