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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샛강에서] 반대하지 않는 교회



재난이 닥치면 언제나 교계에선 한바탕 소동이 벌어진다. 교회들은 성금 모금 캠페인을 벌이고 교계 단체들은 긴급 구호에 나서며 많은 성도는 자원봉사자가 된다. 한국에서 복지 분야 활동을 하는 곳의 60% 이상이 교회 혹은 교회 둘레에 있는 단체라는 통계가 있을 정도로 한국교회의 활동은 대단하다. 한데 교회 바깥 사람들은 교회의 활약상을 잘 모른다. 교회들이 내세우는 나눔과 섬김의 정신은 교회의 이런저런 치부를 숨기려는 데코레이션일 뿐이라고 여기는 듯하다. 최근 만난 한 목회자는 이런 현실에 안타까워하면서 이같이 말했다. “가을이면 많은 교회가 소외 계층을 위한 김장 나누기 행사를 엽니다. 그런데 이 행사에서 김치를 담그고 수혜자를 조사하고 김치를 배달하는 일은 전부 성도들이 떠맡습니다. 외부인을 배제하는 이런 구조로는 교회의 선행이 세상에 알려지기 힘듭니다.”

누구나 세상의 가장자리를 살피면 확인할 수 있다. 교회가 이 세계의 안전망 중 하나라는 사실을. 김장 나누기 행사가 그렇듯 제대로 드러나지 않았을 뿐 교회가 실천하는 이웃 사랑의 정신은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구현되고 있다. 저널리스트 니콜라스 크리스토프는 2011년 7월 뉴욕타임스에 이런 내용의 글을 기고했었다.

“소득의 10%를 기부하는 복음주의자는 정말 많다. 국내외에서 기아, 말라리아, 인신매매, 대량 학살과 싸우는 최전선에 가보면 거기서 만날 수 있는 가장 용감한 사람 중 상당수는 복음주의 크리스천이다. (중략) 나는 이런 식으로 목숨을 거는 사람들을 보면 경외감에 입을 다물 수 없다. 그리고 그런 믿음이 뉴욕의 칵테일 파티에서 조롱당하는 모습을 보면 구역질이 난다.”

물론 교계의 나눔이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는 이유가 그것이 너무도 고요하게 진행되는 탓만은 아닐 것이다. 교회의 선행이 무대 위 방백처럼 함께 세상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가닿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는 교회들이 보이는 어떤 행태와 연관이 있을 성싶다. 필립 얀시가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를 출간하고 가진 인터뷰를 보면 이런 내용이 등장한다. 사람들에게 크리스천이란 어떤 사람인가 물었더니 답변 중에 사랑이나 은혜 같은 단어는 거의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상당수 응답자가 규정한 기독교인은 ‘뭔가에 반대하는 사람’이었다.

한국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크리스천을 조롱하는 사람들 혹은 교회에 무관심한 이들에게 한국교회는 항상 ‘○○○에 반대하는 집단’이다. ‘반대 투쟁’의 타깃은 때로는 이슬람이, 가끔은 동성애가, 어떤 경우엔 개신교의 이해에 반하는 국가 정책이 되곤 한다. 어떤 목회자들은 크리스천이 서로 어깨를 겯고 벌이는 어기찬 반대 투쟁만이 한국교회를 움직이는 땔감이어야 한다고 여기는 듯하다.

김병삼 만나교회 담임목사는 지난 1월 국민일보와 가진 인터뷰에서 이단 이슈에 대한 견해를 묻자 캐나다의 위조지폐 감별사들 이야기를 들려줬는데 간추리자면 이런 내용이었다. 이들은 훈련할 때 위폐는 만져보지도 않는다. 진짜 지폐를 만지는 일만 반복해 금세 위폐를 감지하는 감각을 체득한다. 김 목사는 “이단 이슈도 마찬가지”라며 “우리가 진리의 세계를 확고히 세우면 이단 문제는 얼마든지 이겨낼 수 있다”고 말했다.

당시 나는 그가 이런 답변을 하면서 행간에 담으려 했던 의미가 무엇일지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스캇 솔즈의 책 ‘선에 갇힌 인간, 선 밖의 예수’에는 다음과 같은 대목이 등장한다. “꼭 필요할 때는 비판하라. 인간의 번영과 구속이 선한 비판에 달려 있다. 그러나 될 수 있는 한 인정하라. 모든 사람은 하나님을 닮았기 때문에 위대하다는 사실을 항상 기억하라. 미완성 작품이지만 완성될 날을 고대하는 모든 사람은 약하면서도 위대하다.”

박지훈 종교부 차장 lucidfal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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