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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소금] 예수의 고난으로 잉태된 부활



여느 때와 같이 베드에 누워 왼팔을 걷어붙이고 심호흡을 한 뒤 눈을 질끈 감았다. 날카로운 바늘이 혈관을 뚫었고 선혈이 호스를 따라 팩으로 흘러들었다.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는 사이 팩이 빨간 피로 꽉 채워지는 걸 보면서 마음이 흐뭇해졌다. 드디어 100번째구나. 내 인생 목표 중 하나가 실현되는 순간이었다.

지난달 헌혈의집에서 100회 헌혈 기념사진을 찍은 뒤 적십자 헌혈유공장(명예장)을 받아 돌아오는 길에 새로운 다짐을 했다. 주님이 생을 허락하는 동안 200회 헌혈에 도전해 보겠다고.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는데도 이번 헌혈이 내게 특별했던 것은 코로나19 확산으로 헌혈자가 급감해 헌혈 재고량이 3일 치 정도밖에 남지 않은 탓도 있지만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하는 사순절에 작은 사랑을 실천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헌혈을 하는 동안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해 십자가에 매달려 피 흘리시는 모습을 떠올렸다. 많은 교회와 성도들이 이웃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헌혈에 동참하고 있다. 두려움을 무릅쓰고 자신의 피를 나누는 행위는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과 보혈을 생각하게 한다.

배우 멜 깁슨이 감독을 맡았던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The Passion of The Christ)’를 본 기억이 난다. 예수님의 수난 과정이 극사실주의로 그려져 영화를 보는 내내 마음이 아플 정도였다. 우리는 예수님이 가시관을 쓰고 채찍질을 당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시는 과정을 관념적으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수난 과정은 실재적인 것이었고 그분도 인간이셨기에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오죽했으면 하나님께 “이 잔을 거두어 주소서”라고 간절히 청했을까. 그러한 고통을 통해 부활의 싹이 잉태되는 것이다. “사람의 아들은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겪고… 죽임을 당하였다가 사흘 만에 되살아나야 한다.”

예수님의 죽음은 그분의 사랑과 우리의 죄가 만난 결과다. 예수님처럼 사랑하는 삶을 살다가 고통을 겪고 마침내 죽음에 이르더라도 그것이 끝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부활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통해 믿고 있다. 교회는 주님의 보혈로만 거룩하고 깨끗해지며 성도는 예수님의 피로만 구원받을 수 있다.

3년째 계속되는 코로나19 팬데믹, 경북 울진과 강원도에 불어닥쳐 삶의 터전을 앗아간 대형 산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이들에게서 예수님의 고난받는 모습을 본다. 재난지원금 전액을 우크라이나로 보낸 권모씨, 이불 장사로 어렵게 모은 1억원을 익명으로 우크라이나를 위해 쾌척한 여성 집사가 더욱 소중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선교사들은 우크라이나 접경 지대에서 피란민들을 돌보고, 우크라이나에 고립된 성도들에게 생필품을 전달하기 위해 죽음을 무릅쓰고 있다.

다음 주부터 고난주간이 시작된다.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부터 겟세마네 동산에서 피땀 흘리시며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시는 모습, 제자들과의 최후의 만찬, 사형 선고와 골고다 언덕으로 이어지는 십자가의 길,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의 외침을 끝으로 숨을 거두시는 예수님. 이 모든 수난과 죽음을 거쳐 예수님은 마침내 부활하신다. 하지만 부활은 기쁘게 맞이하면서도 그 밑거름이 된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외면하는 경우가 많다. 고난주간에 예수님의 사랑과 죽음을 깊이 묵상할 때 의미 있는 부활을 맞이할 수 있지 않을까.

교회와 성도들이 전쟁과 재난으로 고통받는 이들, 특히 우리 사회의 차별받고 소외된 이들을 기억하며 함께 기도해야겠다. 이동권 보장을 요구하는 장애인들의 처절한 외침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에게 해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이다.”

김재중 종교국 부국장 jj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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