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황성주 (14) 슈바이처 롤모델로 공부 집중… 두 달 만에 상위권 도약

황성주 회장의 고교 1학년 때 꿈은 목장주인이 되겠다는 것이었지만 양인옥 미술 선생님의 은퇴수업 시간에 감명을 받아 슈바이처 박사처럼 봉사하는 의사가 되겠다는 꿈을 꾸게 됐다. 2015년 에티오피아에서 의료봉사를 하고 있는 황 회장.


쇼펜하우어는 두 가지의 불행이 있다고 했다. 하나는 꿈을 이루지 못한 불행이고 다른 하나는 꿈을 이룬 불행이다. 전자는 결핍과 좌절이 계속되고, 후자는 오만과 권태의 시기가 오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꿈은 특별한 상황에서 꾸게 되거나 주변 환경에 영향을 받는다. 나의 어린 시절은 가난했고 상처가 많았다. 그래서 늘 목가적 환경을 동경했고 커서 목장 주인이 되겠다는 꿈을 꿨다. 나는 호남의 명문 광주일고에 다녔다. 하지만 내 성적은 전교 450등이었다. 그런 내게 인생의 전환점이 된 것이 고교 1학년 학기말 마지막 수업 시간이었다. 양인옥 미술 선생님의 말씀은 영원히 잊을 수 없다.

“내가 40년간 교직 생활을 했는데 가장 보람 있었을 때가 언제였는지 아니? 내가 어느 섬마을에 부임했을 때였지. 섬마을에서 2년 동안 아이들과 주민들에게 헌신하며 봉사하다가 육지로 발령이 나서 그곳을 떠나게 되었는데, 떠나는 날 부둣가에 온 마을 사람들이 나와 울면서 가지 말라고 하더라고…. 지난 40여 년을 회고해보니 아낌없이 나 자신을 내어주고 봉사하며 섬겼던 그 때가 가장 보람 있던 시간이었던 것 같아.”

그 말씀을 듣고 내 마음에 큰 감동이 밀려왔다. 선생님의 인생 회고를 통해 ‘경이의 감정’을 느꼈다. 그래서 나만의 안락한 삶을 위해 목장 주인으로 살기보다는 타인을 위한 삶을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의사가 되어 슈바이처 박사처럼 일생 봉사하는 삶을 살고 싶다는 꿈을 갖게 된 것도 그때였다. 미술 선생님의 인생 이야기 속에서 추출한 경이로움은 ‘봉사’라는 단어였다. 봉사라는 단어가 ‘의사’라는 직업, 곧바로 슈바이처 박사가 롤모델로 떠올랐다. ‘꿈’이란 대단한 능력을 갖고 있다. 나는 곧 의과대학에 가겠다고 결심했다. 그런데 꿈은 또한 ‘확장성’을 갖고 있다. 의과대학을 가는데 서울의대를 가겠다고 마음을 정한 것이다. 이왕이면 서울의대를 가서 최고의 의사가 돼 최상의 삶으로 봉사하겠다는 열망이 생겼다. 당시 성적으로는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다. 놀랍게도 꿈은 집중력을 유발한다. 꿈을 꾸게 되면 반드시 집중하게 된다. 내가 이 꿈을 꾸기 전에는 항상 어머니가 제발 공부 좀 하라고 다그치실 정도였다. 그런데 내가 공부에 집중하자 어머니의 태도가 180도로 달라졌다. 좀 쉬면서 공부하라는 것이었다. 결국 다음 달에 전교 200등, 그 다음 달에 전교 19등을 했다. 그래도 역부족이어서 결국 재수 끝에 꿈을 이뤘다.

집중하지 않으면 목표에 도달할 수 없다. 재능은 10배의 차이를 가져오지만 집중은 1000배의 차이를 가져온다. 꿈은 모든 일을 하나로 통합시키는 역할을 하며 자동적으로 절제하는 생활을 하도록 만든다. 현대인들의 불행은 꿈을 이루지 못해서가 아니라 그 이루지 못할 꿈조차 없는 것이 불행이다. 나이에 관계없이 끝없이 꿈을 꾸며 미래를 현재처럼 사는 사람이 젊은이고, 꿈 없이 현실에 안주하는 사람이 늙은이다.

정리=윤중식 종교기획위원 yunj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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