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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사초롱] 빠른 연생 방지법 폐지하라



빠른 연생 방지법은 초·중등교육법 13조 1항 취학 의무에 관한 규정이다. “모든 국민은 보호하는 자녀 또는 아동이 6세가 된 날이 속하는 해의 다음 해 3월 1일에 그 자녀 또는 아동을 초등학교에 입학시켜야 한다.” 여기서 6세는 만 나이다. 그런데 복잡하다. ‘6세가 된 날이 속하는 해의 다음 해’는 무슨 말일까? 이렇게 비비 꼬아놓은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오늘 만 7세 생일을 맞는 아이가 있다고 하자. 이 아이는 언제 초등학교에 입학해야 할까? 만 7세가 되는 해에 입학시켜야 한다면 올해 3월 1일에 미리 입학했어야 할까? 하지만 이 아이는 내년 3월 1일에도 만 7세다. 생일이 지나지 않았으니까. 내년에 입학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 같은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6세가 된 날이 속하는 해의 다음 해’라는 복잡한 조문을 집어넣은 것이다.

초·중등교육법 13조 1항은 2007년 개정됐다. 그전까지 입학연령은 “만 6세가 된 날의 다음 날 이후의 최초 학년 초”였다. 쉽게 말해 신학기가 시작되는 3월 1일의 만 나이가 기준이었다. 따라서 신학기 시작일에 이미 생일이 지난 1, 2월생은 전년도 3~12월생과 함께 입학했다. 이들이 바로 ‘빠른 연생’이다. 만 나이는 같지만 한국식 나이는 한 살 어린 탓에 학부모의 불만이 속출했다. 이로 인해 건국 이래 반세기 넘게 유지된 만 나이 기준의 입학연령은 2007년부터 한국식 나이 기준으로 개정됐다. 개정 이유는 국가법령정보센터 사이트에 자세히 나와 있다. “1월생 또는 2월생 자녀를 둔 학부모들이 또래보다 한 살 어린 나이로 입학할 경우 학교생활에서 부적응하게 될 것을 우려해 자녀의 취학 시기를 일부러 늦추고 있는 부작용을 해소”하기 위해서란다. 결국 초·중등교육법 13조 1항은 빠른 연생 방지법이다.

오락가락하는 우리와 달리 일본과 중국의 입학연령 기준은 예나 지금이나 만 나이다. 4월에 신학기가 시작되는 일본은 입학연령 기준일이 4월 1일이다. 4~12월생과 이듬해 1~3월생이 동급생이다. 9월에 신학기가 시작되는 중국은 입학연령 기준일이 9월 1일이다. 9~12월생과 이듬해 1~8월생이 동급생이다. 우리도 나이 셈법을 만 나이로 일원화하면 입학연령 기준일 역시 일본과 중국처럼 신학기 시작일에 맞춰야 한다. ‘빠른 연생’의 부활은 불가피하다.

차기 정부가 연령 셈법을 만 나이로 통일하겠다고 한다. 법적·행정적 연령은 통일하는 것이 바람직하니 환영할 만하다. 다만 여전히 한국식 나이 관념이 강고한 현실에서 파급 효과에 대한 고려가 부족해 보인다. 가장 민감한 문제가 될 수 있는 입학연령은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조기 입학과 입학 유예도 가능하니 학부모 판단에 맡기겠다고 한다면 무책임한 처사다. 그것은 특별한 사정이 있는 아이들을 위한 제도다. 대부분 학부모는 자녀가 같은 연령 아이들과 동급생이 되는 것을 선호한다.

입학연령을 갑자기 만 나이 기준으로 바꾸면 당장 자녀 입학을 앞둔 학부모들이 혼란에 빠질 것이다. 1, 2월생 자녀를 둔 학부모는 물론 입학 시기를 조절하려고 출산 시기를 조절한 학부모의 반발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반발이 무서워 그대로 두면 나이 셈법을 만 나이로 일원화한다면서 초등학교 입학연령만 한국식 나이 기준으로 유지하는 꼴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13조 1항에 따라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아이들은 모든 교육 과정을 마칠 때까지 계속 한국식 나이에 맞춰 진학하게 된다. 개혁은 반쪽에 그치고 만 나이 정착은 요원해진다. 13조 1항은 개정하건 않건 비판을 피하기 어려운 악수다. 숙의 과정도 없이 성급히 발표한 대가이니 어쩔 수 없다. 차기 정부는 조속히 입장을 정리해 교육 현장의 혼란을 방지하기 바란다.

장유승(단국대 연구교수·동양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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