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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승민의 사이언스&테크놀로지] ‘꿈의 에너지’ 핵융합 실용화 어디까지 왔나



한국형 핵융합실험로 KSTAR의 모습.


국제핵융합실험로(ITER) 건설현장.


영국원자력청(UKAEA)은 지난 2월 핵융합 연구장치 ‘제트(JET)’로 약 5초 동안 약 59MJ(메가줄)의 열에너지를 생성하는 데 성공했다. 이 에너지를 전기로 바꾸면 약 11㎿(메가와트)에 달한다. 대규모 태양광발전 시설이나 풍력발전 단지에서 나오는 전력량과 맞먹는다. 실험용 장비에서 이 정도 에너지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는 것은 핵융합 기술이 이제는 현실의 범주에 들어섰다는 의미다. 이 사례를 두고 “핵융합 에너지 연구의 새로운 이정표를 달성한 것”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건 이 때문이다. 수십 년간 쌓아온 인류의 핵융합 연구가 마침내 현실 속으로 튀어나오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핵융합발전은 ‘꿈의 에너지’

핵융합발전은 태양이 빛나는 원리를 이용해 지상에서 에너지를 만들어 내자는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흔히 ‘인공 태양’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수소 원자 두 개가 합쳐져 헬륨 원자가 되면 질량이 약간 줄어드는데, 이 질량이 엄청난 에너지로 바뀐다. 원자력발전과 달리 폭발 위험이 없고 온실가스도 나오지 않는 데다 폐기물 걱정도 없다. 원료로는 삼중수소와 중수소를 사용한다. 삼중수소는 리튬을 재처리해 얻을 수 있고, 중수소끼리 융합해 만들어낼 수도 있다. 필요하다면 달에 무진장으로 널려 있는 헬륨3로 대체할 수도 있다. 중수소는 깊은 바닷물에는 거의 무한대로 함유돼 있다. 사실상 핵융합발전은 무한의 원료를 가지고 있는 셈이다. 효율도 원자력발전의 5배 이상이라 실용화만 된다면 약점을 찾기 어렵다.

지금까지 핵융합 연구는 미래를 준비하는 학문 정도로 여겨졌다. 그러나 최근 이야기가 달라지고 있다. 현실화 단계를 엿보는 성과가 속속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연구 성과도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로 꼽힌다. 한국 핵융합 연구는 국가핵융합에너지연구원(핵융합연)이 대표적인데, 한국형 핵융합실험로 케이스타(KSTAR)를 운영 중이다. 지난해 11월 핵융합연은 본격적인 핵융합을 달성의 핵심 조건인 ‘1억도의 초고온 플라스마’ 발생에 성공하고, 이를 30초간 유지하는 데 성공해 세계 기록을 세웠다. 핵융합은 단계에 따라 효율이 나뉘는데, 고성능 모드로 운전하려면 1억도 이상의 온도를 장시간 유지하는 기술이 필요하다. 이 분야에서 한국은 세계적 기술력을 갖고 있다. 연구진은 앞으로 2026년까지 1억도 온도로 300초 운전에 도전할 계획이다. 300초 동안 핵융합 상태를 유지하면 실용화했을 경우 생길 수 있는 기술적 난제를 대부분 점검할 수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국제핵융합실험로(ITER) → 발전소 건설

핵융합 실용화는 어떻게 이뤄질까. 우선 ‘공학적 검증’을 할 초대형 실험시설이 추가로 필요하다. KSTAR와 비슷한 각국의 실험 장치에서 이론적 검증을 끝내면 이를 대규모 실험 장치로 다시 검증하는 식이다. 세계적으로 KSTAR와 비슷한 핵융합 실험시설은 100곳에 달한다.

KSTAR는 본체 크기만 직경 9.4m, 높이 9.6m, 무게 1000t에 달하는 대형 실험시설이지만 핵융합 실험시설 중에는 더 큰 것이 많다. 본격적인 핵융합 실용화 연구보다는 핵융합 자체를 제대로 일으킬 수 있는지 검증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이다. 실용화 연구는 지금까지 KSTAR보다 10배 정도 규모가 큰 UKAEA의 JET 등에서 제한적으로 진행됐다.

앞으로 이런 역할을 도맡아 할 초대형 핵융합 실험로, 즉 국제핵융합실험로(ITER)가 건설되고 있다. 한국, 미국, 유럽연합, 일본, 러시아, 중국, 인도 등 세계 7개국이 공동으로 프랑스 남부 카다라슈에 건설 중으로 KSTAR보다 25배 이상 크다. 완공 후 열출력 500㎿, 에너지 증폭률(Q) 10 이상이 될 전망이다. Q값이 10이라는 것은 핵융합 반응으로 만들어지는 에너지가 주입된 에너지보다 10배 많다는 의미다. 핵융합에너지 실용화가 가능하다는 것을 공학적으로 실증하게 된다. ITER의 실험이 끝나면 이 데이터를 바탕으로 비로소 최초의 핵융합발전소 건설이 가능하게 된다.

핵융합발전 시장에 뛰어든 국제사회

세계 최초의 핵융합발전소를 건설할 나라는 영국이 될 것으로 보인다. 영국은 2019년 9월 ‘205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 제로’를 목표로 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2025년까지 화력발전을 완전히 퇴출하고, 2040년까지 세계 최초로 상용 전기를 생산하는 소형 핵융합발전소를 구축하겠다는 목표다. 발전소 이름은 스텝(STEP). 우선은 100㎿ 이상의 전력 생산이 목표다. 2024년까지 STEP 구축을 위해 총 4년간 2억2000만 파운드(약 3500억원)를 투입한다는 구체적 계획도 세웠다. 2011년 10월에는 부지 후보지 다섯 곳을 선정했으며, 이 곳 중 한 곳을 택해 올해 안에 착공할 계획이다.

미국과 캐나다, 독일, 영국 등 각국의 기업들은 핵융합 시장을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보고 있다. 빌 게이츠가 투자하고 있는 MIT스핀오프기업 ‘코먼웰스퓨전시스템스’는 2025년까지 상용 소형 핵융합로 개발이 목표라고 밝히는 등 35개 이상의 핵융합 스타트업들이 관련 시장에 뛰어들었다.

핵융합발전의 장점은 또 기존 발전시설과 달리 지하자원에 의존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다. 우라늄이나 석탄, 석유나 천연가스와 달리 세계 어디서나 기술력만 있으면 된다. 추가 연구를 통해 선박용과 같은 초소형 발전시설을 만드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다.

또 다른 장점은 탄소제로 사회의 기반이 완성된다는 점이다. 핵융합 기술을 손에 넣지 않는 한 완전한 청정에너지를 얻기란 불가능하다고 주장하는 과학자들도 적지 않다. 수소 등의 2차 에너지를 만들 때는 전기나 천연가스가 필요한데, 이 과정에서 적잖은 온실가스가 발생한다. 핵융합은 이런 염려 없이 충분한 전력을 공급해준다.

1995년 발간된 한 신문 기사를 보면 “핵융합발전은 실용화까지 20~30년은 걸릴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27년 전 주장이지만 전문가들은 여전히 ‘앞으로 30년 정도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실용화에 의구심이 컸다는 의미다. 그러나 최근 상황은 과거와 다르게 느껴진다. 핵융합발전은 어디까지 왔을까.

전승민 과학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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