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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휴일] 그럴 때가 있다



매끄러운 길인데
핸들이 덜컹할 때가 있다.
지구 반대편에서 누군가
눈물로 제 발등을 찍을 때다.

탁자에 놓인 소주잔이
저 혼자 떨릴 때가 있다.
총소리 잦아든 어딘가에서
오래도록 노을을 바라보던 젖은 눈망울이
어린 입술을 깨물며 가슴을 칠 때다.

그럴 때가 있다.

한숨 주머니를 터트리려고
가슴을 치다가, 가만 돌주먹을 내려놓는다.
어딘가에 사나흘 만에 젖을 빨다가
막 잠이 든 아기가 깨어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촛불이 깜박,
까만 심지를 보여주었다가
다시 살아날 때가 있다.
순간, 아득히 먼 곳에
불씨를 건네주고 온 거다.

-이정록 시집 ‘그럴 때가 있다’ 중

지금 여기서 “어딘가”와 “누군가”를 생각하는 마음. 여기와 “어딘가”가 연결돼 있고, 나와 “누군가”가 연결돼 있다는 감각. 그런 마음과 감각을 느끼는 순간이 아주 가끔씩이라도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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