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이양구 (11) 저평가된 우크라이나에 농업 실크로드 비전 구상

이양구 전 우크라이나 대사가 2018년 3월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의 오페라극장에서 열린 ‘올해의 인물상’ 시상식에서 ‘2017 올해의 외교관상’을 수상한 뒤 아내와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대사로 간 우크라이나는 묘한 매력을 지닌 나라였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우크라이나의 2021년 1인당 국민소득은 3000달러다. 그런데 대사 시절 이 나라를 찾은 다른 나라 경제 관료나 기업인들은 2만 달러로 고평가하는 걸 봤다. 실제 우크라이나는 밀 보리 등이 자라는 곡창지대로 전 세계 식량 바구니라 불리는 데다, 철광석 티타늄 등 자원이 대거 매장된 자원 부국으로 잠재력을 갖춘 나라였다. 우크라이나 사람들은 성실하고 착하면서 자존감이 높았다. 동양 사람을 존중했고 특히 한국 사람에겐 존경을 표하기도 했다.

‘저평가되는 나라’라는 게 안타까웠지만 저평가되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국가적 위험과 지정학적 위험이었다. 부실한 법 제도, 고위급의 부정부패 등으로 국가 신용등급은 낮았고 러시아 등 위험 요소는 상존했다.

우리나라는 정부와 기업 모두 우크라이나에 대한 투자를 꺼렸다. 이 점은 두고두고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다. 다른 선진국과 글로벌 기업들은 우크라이나 투자를 멈추지 않았기 때문이다. 상식과 이론만으로 투자를 결정하지 않았으면 했다.

그러다 보니 본부인 외교부도 싸울 무기는 주지 않고 알아서 싸우도록 했다. 결국 스스로 방법을 찾아야 했다. 대표적인 게 실크로드 비전이었다. 이 비전의 시작은 카자흐스탄에 있을 때였다. 그곳에서 영국 작가 피터 홉커크의 책 ‘그레이트 게임’을 읽었고 지정학의 중요성을 알게 됐다. 책은 지정학을 똑바로 이해하지 못하면 우리도 제국의 희생양이 될 수 있음을 알려줬다. 지정학을 공부했고 여기서 내린 결론은 총칼로 싸우던 군사제국주의 대신 경제제국주의 문화제국주의 구축이었다.

실크로드 비전은 경제와 문화제국주의를 합한 것이다. 우크라이나 카자흐스탄 러시아 등 광활한 땅을 갖고 있는 국가의 토지를 연결해 농업의 실크로드를 만들면 스마트팜 빅데이터 유통 등 기술과 인프라를 투입해 멀티플 실크로드로 발전시키자는 구상이었다.

처음엔 ‘하늘에서 별 딴다’고 반응하던 사람들이 관심을 보였다. 우크라이나 정부와 기업도 마찬가지였다. 이 같은 노력을 우크라이나가 알아봤다. 2018년 현지 민간재단인 ‘올해의 인물’을 통해 ‘2017 올해의 외교관상’을 받았다. 턱시도 차림으로 드레스를 입은 아내와 함께 시상식장 레드카펫을 밟았다. 외교부 생활에서 가장 화려한 순간이 아니었을까. 무엇보다 대사 부임 후 2년 재임 기간에 대한 평가라는 점에서 의미 있었다. 이 단체는 정부 간 경제협의체를 구성하고 문화·학술·스포츠 등의 행사를 개최해 양국 관계를 증진한 공로를 외교관상 수상자로 선정한 이유라고 밝혔다. 무엇보다 농업 프로젝트 추진을 높이 평가했다.

그렇게 우크라이나 대사로 2019년 외교관의 삶을 마감했다. 가끔 사람들은 외교관으로 여러 나라를 다닌 나에게 이런 질문을 건넨다. 어느 나라가 가장 좋았냐고. 외교관이라면 어디를 가건 본분과 사명을 담아 그 나라를 사랑해야 한다고 답한다. 그럼에도 가장 좋아하는, 아니 사랑하는 나라라면 우크라이나라고 말한다. 지난 2월 러시아의 침공을 받은 우크라이나는 지금 나에게 슬픔이고 아픔이 됐다.

정리=서윤경 기자 y27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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