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이양구 (13) 36년 외교관의 삶… 힘이 돼준 취미와 특기

이양구(오른쪽 두 번째) 전 우크라이나 대사가 1992년 10월 자신이 리더로 있는 등산모임의 멤버들과 지리산 천왕봉에 올랐다.


외교부 생활을 하면서 의도치 않은 요소가 힘이 되는 경우도 있었다. 바로 취미였다. 나는 어릴 때부터 좋아하던 만화책으로 상상력을 키웠고 영화를 보며 세계로 시야를 넓혔다. 이는 외교관의 삶과 맞닿아 있었다.

또 다른 취미인 등산도 마찬가지였다. 등산은 가장 힘든 때 시작했다. 원치 않는 대학을 다니며 개인적으로 힘들었고 정치적 상황도 불안정했다. 광주민주화운동 직후였던 1980년 6월 고향 근처 지리산을 올랐다. 그때부터 힘들고 어려우면 산을 찾았고 이제는 취미가 됐다. 등산의 매력은 동기부여가 된다는 점이다. 오를 때는 생각할 틈 없이 힘들고 정상에선 성취감이 있었다. 지난 4월엔 마흔한 번째로 지리산 천왕봉에 올랐다.

등산은 외교부 안에서 특기가 됐다. 91년 미국 연수를 끝내고 복귀하니 외교부에 등산 모임이 있었다. 모임에서 당시 외교정책기획실장이던 권병현 대사가 ‘산을 잘 아는 사람’이라는 이유로 나를 리더로 낙점했다. 말이 좋아 리더이지 모임의 막내인 나는 일꾼이었다. 이후 권 대사는 외교부 안에서 나를 끌어주셨다. 이 모임을 통해 리더십도 배웠다. 지금도 권 대사는 나를 만날 때면 ‘리더십 있었던 막내’라며 높이 평가하신다.

외교부에 있으면서 특기도 생겼다. 거시적 시야다. 만약 은퇴 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는 일이 발생했다면 어떻게 대응했을까 생각해 본다. 러시아, 우크라이나만 바라볼 일은 아니었다. 러시아 제재에 동참한 서방 국가들이 한국의 입장을 눈여겨볼 게 분명했다.

국가 간 충돌을 이야기할 때 지정학 지경학과 함께 논해야 할 게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2000년인가 모스크바 코스타 수련회에서 경북대 경제학 교수의 강의를 들은 뒤 떠올린 단어, ‘지영학’이다. 나는 성경적 관점에서 경제를 설명하던 그 교수처럼 성경적 관점에서 외교와 외교관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종교가 그 나라의 가치관 국가관 세계관을 좌우할 수 있었다. 또 국가가 어떤 종교를 채택하느냐에 따라 국가 발전에 도움이 되거나 마이너스가 될 수도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이를 나는 지영학이라 명명했다.

처절하게 자기 평가가 필요하다는 사실도 배웠다. 88년 군 제대 후 발령받은 의전과에서 혹독하게 현업을 가르친 김하중 과장이 일본 참사관으로 갈 때다. 정부종합청사를 나서는 김 과장을 쫓아가 “기대에 못 미쳤습니다. 죄송합니다”라고 말했다. 그의 답은 “이 친구야 잘해”였다. 마음에 들지 않았음을 의미하는 그 한 마디는 외교관 생활의 길라잡이가 됐다. 다시는 그 말을 듣지 않겠다며 다짐했다. 이후 어디를 가든 인정받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했고 인정을 받으니 일을 즐길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36년 외교관의 삶에 아쉬움이 없었던 건 아니다. 2002년 정보화 담당관 시절 실행에 옮기지 못한 외교부 혁신을 2010년 다시 실행할 기회를 잡았다. 국장급인 외교부 조정기획관이 되면서다. 그러나 외교부 내부 상황으로 결국 혁신은 미완으로 끝났다. 2020년 1월 정년퇴임식 때 퇴임사에서도 아쉬움 중 하나로 꼽은 단어가 ‘혁신’이었다.

정리=서윤경 기자 y27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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