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이양구 (14) ‘농업전도사’ 삶 살며 농업을 최대의 미래산업으로…

이양구(왼쪽) 전 우크라이나 대사가 광활한 우크라이나 해바라기 밭에서 찍은 사진. 유엔 산하 세계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우크라이나는 해바라기씨유 수출국 1위다.


36년의 외교관 시절을 끝내고 나는 전도사가 됐다. 오해하지는 마시라. 농업 전도사, 유라시아 전도사, 지속가능발전목표(SDG) 전도사가 됐다는 뜻이다.

농업 전도사란 말은 농림부가 나한테 한 말이고 유라시아 전도사는 2014년 한 경제지와 인터뷰를 한 뒤 기사에서 언급된 말이다. 그중 농업 전도사가 된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나는 어릴 때 고향인 함양에서 어머니 농사일을 도우며 자연의 변화를 경험했다. 철없던 시절 도시의 삶을 부러워한 적도 있지만 지금은 자연 친화적 성품을 준 시골이 나에게 축복이었음을 잘 알고 있다.

서울로 올라와 잊고 있던 농업의 가치를 다시 인식한 건 2007년 카자흐스탄에서 근무하면서다. 카자흐스탄의 농토는 한여름 밤 원두막에 앉아 망을 보던 수박밭과 큰 차이가 있었다. 워낙 광활하니 토지 단위부터 달랐다.

러시아에는 이런 말이 있다. 40도 술이 아니면 술이라 말하지 말고, 영하 40도가 아니면 추위라 말하지 말며 4000㎞가 아니면 거리라고 말하지 말라. 나는 하나를 더 붙이고 싶다. 4만ha 땅이 아니면 땅이라고 말하지 말라는 것. 참고로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땅이 2만8000ha인 김제평야다.

카자흐스탄도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내가 구축한 프로젝트는 이름부터 남달랐다. ‘100만ha 프로젝트’다. 100만ha는 100억㎡이고 약 30억3000평이다.

카자흐스탄은 땅만 넓은 게 아니라 지정학적 요충지이기도 했다. 19~20세기 초 영국과 러시아는 중앙아시아 내륙의 주도권을 두고 패권 다툼을 벌였는데 이를 ‘그레이트 게임’이라 불렀다. 20세기 초 영국 소설가 러디어드 키플링이 동명의 소설을 쓰면서 유명해졌다. 소설의 배경은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등 소련 붕괴 후 독립한 이른바 탄(tan) 5개국이다.

카자흐스탄에서 지정학에 눈을 뜨고 농업의 중요성을 알게 됐다면 농업의 실크로드 비전을 구체적으로 세우게 한 건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와 우크라이나에서다.

농업을 에너지 환경 의료와 물류로 연결하는 멀티 실크로드로 확장시켰다. 카자흐스탄 우크라이나 러시아 등 대규모 영토가 있는 나라들을 연결해 농업 벨트를 만들어 농사를 지으면 우리나라는 AI 빅데이터 스마트팜 등 과학 기술을 지원하는 방식이다. 농산물을 가공해 부가가치를 올릴 뿐 아니라 신재생 에너지, 바이오, 물류 등 새로운 영역까지 연결할 수 있었다.

농업을 최고의 미래 산업으로 본 사람은 나 말고도 많았다. 대표적 인물이 이스라엘을 세계 최고 혁신국가로 만든 고(故) 시몬 페레스 대통령이다. 그는 “농업은 95%가 과학과 기술, 5%가 노동”이라고 했다.

요즘 들어 멀티 실크로드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다. 환경문제 등으로 식량 위기 우려가 나온 데다 최근 러시아가 전 세계 빵바구니인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농산물 가격이 급등하면서다. 멀티 실크로드의 축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은 아이러니하게도 원자재처럼 식량도 확보해야 하는 시대를 앞당긴 셈이 됐다.

정리=서윤경 기자 y27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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