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이양구 (15) 동북아 미래 달린 극동 러시아… 유라시아 비전 제시

이양구(가운데) 전 우크라이나 대사가 2012년 6월 블라디보스토크총영사 시절 추코트카주를 방문했을 때 민속 극장에서 특별공연을 본 뒤 출연자들과 기념 사진을 찍었다.


유라시아 전도사의 비전을 키운 건 2011년부터 2014년까지 3년 7개월간 블라디보스토크총영사관에서 총영사로 있을 때다. 블라디보스토크총영사관은 블라디보스토크 하바롭스크 등 극동 러시아 8개 주를 관할하고 있다.

특히 유럽과 아시아를 묶어 부르는 유라시아에서 블라디보스토크는 지리적으로 중요하다. 유라시아 철도를 꿈꾸는 시베리아 횡단열차의 동쪽 끝이다. 러시아 국가 문장에서도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문장 속 머리가 두 개인 독수리는 러시아 전통의 계승과 중앙 권력의 권위를 상징하는 동시에 달리 해석된다. 독수리 머리가 각각 서쪽 유럽과 동쪽의 아시아를 바라보는데 동쪽 끝이 블라디보스토크이다.

내가 블라디보스토크총영사를 자원한 건 단순히 블라디보스토크만의 지리적 위치 때문만은 아니다. 한반도를 비롯한 동북아 미래에 극동 러시아가 중요하게 될 거라는 전략적 판단에서다. 먼저 극동 러시아는 북한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어 안보 차원에서 우리나라에 중요하다.

‘FEW’라 불리는 미래자원 확보에도 필요한 곳이다. FEW는 현재도 미래도 중요 자원인 식량(Food) 에너지(Energy) 물(Water)의 앞글자를 조합한 용어다. 나는 지구온난화가 가속화되면 극동 러시아가 FEW를 확보할 수 있는 주요 지역이 될 거라 봤다. 기온이 올라가면 연해주 등은 지금의 한반도 기후가 되고 그러면 동토인 극동 시베리아에서 농사를 짓고 얼어붙어 활용하지 못했던 북극해가 물류의 중심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시베리아와 가까운 사할린 캄차카 등을 찾아 기후변화 정책을 고민했다.

역사적으로도 극동 러시아는 우리나라에 의미 있는 곳이다. 고구려와 발해 유적지가 많고 임시정부가 세워진 우수리스크도 있다. 많은 고려인들이 사는 연해주는 한인 디아스포라의 상징적 장소였다.

이렇게 중요한 지역인데도 러시아는 극동 러시아를 개발할 여력이 없어 손을 놓고 있었다. 대신 개발할 나라는 주변 국가뿐인데 중국이나 일본과는 사이가 좋지 않으니 한국이 개발에 적격이었다. 우리 정부도 관심을 기울였다. 총영사로 있던 시절 MB정부는 블라디보스토크와 연결해 삼각협력, 박근혜정부는 유라시안 이니셔티브 계획을 내놓기도 했다.

자연히 내가 할 일도 많아졌다. 남·북·러 삼각협력을 포함한 극동 러시아와의 다양한 협력 방안과 정책을 정부에 건의했다. 통일 문제를 보려고 북한과 가까운 블라디보스토크를 찾은 100여명의 국회의원들과 만나기도 했다. 2012년 12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담이 열렸을 때는 의전을 준비하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모스크바 대사관 직원들 사이에선 누가 대사고 누가 총영사인지 모르겠다는 반응도 나왔다.

외교관이라는 직업은 길을 만들고 이를 보는 길라잡이이자 위험한 순간을 빠르게 알리는 경고자 역할을 한다. 북한의 나진, 중국의 훈춘과 연결된 ‘골든 트라이앵글’ 추진에 블라디보스토크를 활용할 필요성도 생각했다. 북한이 안 한다고 손 놓지 말고 우리가 접근할 수 있는 유일한 곳, 블라디보스토크를 이용하자는 얘기다.

정리=서윤경 기자 y27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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