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이양구 (18) 우크라이나 전후 재건… ‘제2 태안반도의 기적’ 구상

이양구 전 우크라이나 대사가 지난 3월 서울 잠실 롯데호텔에서 동부라이온스 클럽이 주최한 행사에서 ‘우크라이나 사태와 우리 대응 전략’을 주제로 강의하고 있다.


36년간 녹아든 외교관 기질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우크라이나 긴급 구호에 이어 다음 비전을 그렸다. 먼저 우크라이나의 전후 재건 사업이다. 전쟁 중 종전을 얘기한다는 게 뜬구름처럼 보일 수 있으나 이미 미국의 바이든 행정부는 ‘뉴마샬’이라는 이름으로 우크라이나 전후 재건을 이야기하고 있다. 마셜 계획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의 황폐화된 동맹국을 위해 미국이 계획한 재건, 원조 계획이다.

우크라이나도 국제 사회에 재건 방식을 제안했다. 각 나라가 특정 도시나 주를 전담, 재건하는 방식이다. 이미 영국은 키이우주, 벨기에는 니콜라예프시 재건을 고민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전쟁은 우크라이나에 비극이지만 또 다른 미래를 그리게 하는 듯하다.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던 이 나라에 전 세계가 관심을 주고 있으니 말이다.

우리나라 역시 재건 사업에 참여하면서 자연스럽게 전후 질서를 정립하는 데 동참할 수 있다. 나는 농업 전도사, 지속가능발전목표(SDGs) 전도사로서 우크라이나 재건 그림을 그려봤다. 우크라이나가 한국을 국가 발전 모델로 삼고 있는 만큼 한 지역에 ‘리틀 코리아’를 만들었으면 좋겠다 싶었다. 우리나라의 역량을 고려해 정보통신기술 기반의 스마트도시 스마트공장 스마트농장 중심의 도시 재건이다. 정부와 공기업 민간기업 NGO가 팀 코리아를 구축하면 시너지를 발휘할 수도 있다. 1만명 평화봉사단 파견, 10만 서포터즈를 확보해 제2 태안반도의 기적을 만들자는 구상이다.

여기서 한국교회와 기독교 단체의 역할도 기대할 만하다. 2007년 태안 앞바다 기름유출 사고 때 한국교회가 보여준 사회적 기능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고아와 노인 등 소외당한 이웃을 도왔던 한국교회의 역량이 우크라이나 재건에 필요하리라 생각했다. 한국전쟁 당시 국제 사회의 지원을 받았던 대한민국이 국제 사회를 돕는 기회가 되는 동시에 전 세계 국가들과 파트너십을 구축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그렇게 나는 우크라이나가 이상적인 전후 복구 모델이 됐으면 한다. 동시에 우크라이나가 우리와 좋은 친구가 됐으면 한다. 우리나라는 최근 폴란드 헝가리 등 동유럽 국가를 유럽 진출의 전초 기지로 삼았는데 이들보다 매력적인 나라가 우크라이나다. 내가 대사로 있을 때도 이미 유럽의 대기업들은 우크라이나에 생산 기지를 만들고 있었다.

우크라이나의 매력은 유럽 시장과 육로로 이동할 수 있고 유럽과는 자유무역협정(FTA)이 체결돼 관세 부담도 덜 수 있다는 점이다. 저렴한 인건비에 비해 IT 등 신기술에 대한 이해도도 높다. 그래서 우크라이나가 생산 물류 수출 기지로 매력적인 나라라고 생각했다. 제2의 베트남도 가능하다고 봤다. 여기에 우크라이나는 곡물부터 원자재까지 원료 조달이 자체적으로 가능하다.

여기서 덧붙이고 싶은 말이 있다. 우크라이나뿐 아니라 러시아와의 협력이다. 푸틴 대통령 등 전쟁을 일으킨 사람들이 나쁘지 러시아 자체가 나쁜 건 아니지 않은가. 유라시아의 균형을 맞추는 역할을 하는 러시아를 고립시켜서는 안 된다. 그들도 우리의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다.

정리=서윤경 기자 y27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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