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송태후 (2) 두 차례 대형 집회 참석… 민족 복음화 헌신 다짐

1974년 8월 13일부터 18일까지 서울 5·16광장(현 서울 여의도공원)에서 개최된 부흥 대성회 ‘EXPLO(엑스플로) 74’에 참석한 기독교인들의 모습. 한국대학생선교회(CCC) 제공


1971년 8월 대전 충무체육관에서 한국 기독교 최초의 1만명 합숙 집회가 열렸다. 6월 말 대학이 방학하자마자 간사님으로부터 집회를 위한 홍보요원으로 전남 강진군과 장흥군에 갈 것을 요청받았다.

나는 사영리와 집회 홍보지를 거지 순례 짐 꾸러미에 넣고 단돈 2000원으로 농어촌 자연 부락을 샅샅이 돌며 30여 교회를 순회했다. 당시 열악한 교통 환경, 비포장도로, 험악한 산길 등을 도보로 순회하던 일은 큰 경험이었다. 한국대학생선교회(CCC)에서 즐겨 부르던 ‘부름받아 나선 이 몸, 순례자의 노래’를 부르며 농촌 들판과 험준한 산골짜기를 넘을 때면 몸은 무더운 날씨에 흘러내리는 땀과 흙먼지로 범벅이 됐다. 그 몰골은 말 그대로 ‘산 거지’였다. 10일 동안 십자가가 보이는 곳마다 찾아가 집회를 홍보했다. 그럴 때마다 만난 성도들은 여비를 보태주기도 하고 갈아입을 옷을 챙겨 주거나 숙식도 제공해주셨다.

당시 장흥군 대덕면 산골짜기의 고 김의환 박사 모교회였던 가학교회를 찾아갔을 때의 일이다. 무척이나 배가 고팠는데 들에서 김을 매고 있는 50대 아주머니에게 사영리로 복음을 전했더니 자기 집으로 데려가 삶은 감자를 주셨다. 감사의 눈물과 땀이 범벅돼 먹는 날 보며 아주머니께서 “나도 예수 믿겠다”고 결심한 일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드디어 거지 순례 홍보 여행과 함께 기도로 사모하던 충무체육관 집회에 참석했다. CCC 김준곤 목사님의 민족 복음화 선언 메시지는 내 마음을 뒤흔들어 하나님 나라 백성의 정체성을 일깨웠다.

3년 뒤 서울 여의도에서 4박 5일간 열린 ‘엑스플로74’는 30만명의 합숙훈련과 200만명의 광장집회로 진행됐다. 당시 나는 마포구 아현초등학교에서 전남의 목포 무안 신안에서 참여한 1200명 성도의 숙식과 교육을 책임지는 총순장으로 섬겼다. 목포지구에서 훈련된 30여명의 교육 순장과 1200여명 성도들의 숙식과 교육, 여의도광장으로의 인솔을 담당했다. 세 끼 식사는 본부에서 차량으로 배송돼 순별로 배식을 했는데 식사 차량이 세 차례나 오지 않아 애를 먹었다. 굶주린 1200명의 항의는 어린 나에게 피 말리는 고통이었다. 사흘 동안 먹지도 못하고 잠도 못 자며 이리저리 뛰어다니다 실신하기도 했다. 하지만 찬송가 ‘십자가 군병들아’를 외치며 저녁 집회를 위해 여의도광장을 향해 행진할 때는 힘이 솟아났다. 김 목사님과 빌 브라이트 CCC 국제총재의 메시지는 민족 복음화를 위해 내 몸을 제물로 드리겠다는 헌신을 다짐하게 했다.

마지막 날 30만명이 참석한 철야 집회에서 나는 비를 맞으며 스코틀랜드를 복음으로 변화시켰던 존 녹스처럼 “민족의 가슴마다 피 묻은 그리스도를 심어 이 땅에 푸른 그리스도의 계절이 오게 해달라”는 기도를 드렸다. 가족 복음화, 학교 복음화, 믿음의 가정을 이뤄 달라는 기도는 모두 응답받아 지금은 복음 천국을 이루고 있다.

CCC가 주최한 두 차례의 대형집회는 지도자로 훈련받는 과정이었다. 거지전도 여행과 총책임 순장으로 섬기며 받은 고난과 혹독한 시련은 지도자로서의 야성을 갖게 해줬다.(욜 2:28)

정리=임보혁 기자 bosse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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