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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 두 거장의 자본주의 논쟁사

전후 50년간 세계 경제학계를 양분한 폴 새뮤얼슨(왼쪽)과 밀턴 프리드먼. 두 거장은 같은 시대를 살아가며 각각 좌파 경제학과 우파 경제학을 대표했다. 둘은 주간지 뉴스위크에 18년 동안 나란히 칼럼을 연재하며 경제학계뿐 아니라 일단 대중에게도 막대한 영향력을 미쳤다. 부키 제공




흥미롭고 지적인 기획이다. 20세기 후반 세계 경제학계를 양분한 두 거장을 한 자리에 초대해 생애와 사상, 필생의 논쟁을 다룬다. 두 사람이 각각 좌파 경제학과 우파 경제학을 대표한 인물이라는 점에서, 둘 사이의 논쟁이 지금도 경제 현안을 둘러싼 거의 모든 논란에서 재연되고 있다는 점에서 현실 정치와 경제를 이해하는 데 유용한 책이다.

폴 새뮤얼슨(1915∼2009)은 ‘경제학자의 경제학자’로 불렸으며 케인스주의를 계승한 ‘신고전파 종합’을 이끌었다. 경제학 문제를 수학적으로 접근하는 연구 방식을 정립했고, 그가 쓴 ‘새뮤얼슨의 경제학’(1948년)은 수 세대 동안 경제학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다.

밀턴 프리드먼(1912∼2006)은 시카고학파의 대표 주자로 그가 내세운 자유지상주의는 보수주의 경제학뿐 아니라 정치사상에도 깊은 영향을 미쳤다. ‘미국 화폐사’(1963년)를 통해 화폐량과 물가를 연관 짓는 화폐 수량설을 부활시켰고, 인플레이션 대응 수단으로 통화정책의 가치를 회복시켰다.

두 사람은 닮은 점이 많다. 유대계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났고 같은 시기 시카고대에서 수학했다. 새뮤얼슨은 MIT에서, 프리드먼은 시카고대에서 교수 생활을 했다. 새뮤얼슨은 1970년에, 프리드먼은 1976년에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다.

하지만 둘의 경제학은 완전히 달랐다. 새뮤얼슨은 자타공인 케인스주의자였고, 프리드먼은 하이에크의 후계자였다. 새뮤얼슨이 정부와 민간으로 이뤄진 현재의 혼합경제체제를 옹호한 반면, 프리드먼은 자유지상주의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글 쓰는 스타일도 달랐다. 새뮤얼슨은 우아한 글을 썼고 프리드먼은 직설적이었다. 정치에 대한 태도도 상이했다. 프리드먼은 적극적으로 정치에 참여해 세상을 바꾸려 했고 새뮤얼슨은 워싱턴과 가까이 지내지 않았다는 걸 평생 자랑으로 여겼다.

좌·우파를 대표하는 두 경제학자는 1965년 주간지 뉴스위크에 나란히 칼럼을 연재하기 시작해 18년간 이어갔다. 1931년 영국에서 시작된 케인스와 하이에크의 지적 설전은 케인스가 ‘일반 이론’(1936년)을 발표하면서 케인스의 승리로 끝났다. 그로부터 30여년이 지난 후 그 후계자들이 다시 맞붙은 것이다. 프리드먼은 케인스주의 진보 경제학을 무너뜨리고 공공 부문을 축소하려는 야심에 불타고 있었다. 새뮤얼슨은 케인스주의의 패권을 지켜야 하는 입장이었다.

책은 칼럼과 저서, 주고받은 편지, 주위 경제학자들의 반응 등을 촘촘하게 인용하면서 두 경제학자의 이론과 사상을 보여주고 쟁점을 설명한다. 경제적 좌파와 우파를 가르는 의견 차이의 핵심에는 다음 질문이 자리하고 있었다. 정부가 시장에 개입해야 하는가. 정부 개입은 의도한 효과를 거둘 수 있는가.

새뮤얼슨은 정부가 좋은 사회를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믿었고 시민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재정 정책을 쓰는 것에 잘못이 전혀 없다고 생각했다. 반면 프리드먼은 정부 개입은 시장을 교란할 뿐 아니라 의도했던 효과를 거둘 수 없다고 여겼다. 정부의 권력은 더 축소돼야 한다고 믿었다.

새뮤얼슨은 청문회에 나가 “법으로 이윤을 정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고 거의 불가능하므로 대신 법인세를 대폭 인상해 이윤을 줄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같은 자리에서 프리드먼은 “현재 법인세율이 너무 높다고 생각한다. 법인세율을 내려야 한다”고 얘기했다.

기업이 규제나 규칙으로부터 자유로울 때만 경제가 발전한다는 신념을 가진 프리드먼은 규제 자체를 싫어했다. 오늘날 규제 완화는 보수주의자들이 개입주의자들에게 맞설 때 쓰는 대표 논리가 됐다. 새뮤얼슨 역시 규제가 경제성장을 저해한다는 점에 동의한다. 다만 시장이 환경 오염이나 위험한 작업으로 인해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을 그 책임자에게 다 물리지 못한다고 믿었고, 이런 시장 실패를 바로잡기 위해 규제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뉴욕타임스는 “새뮤얼슨과 프리드먼의 논쟁만으로도 20세기 미국의 경제정책사를 충분히 설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친구이자 맞수였던 둘의 논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법인세를 올려야 하나 내려야 하나, 규제를 늘려야 하나 줄여야 하나, 균형재정은 절대 선인가, 큰 정부인가 작은 정부인가, 정부는 시장에 얼마나 개입해야 하나, 부자 감세는 경제를 성장시킬 것인가 등 경제 현안마다 둘이 했던 논쟁이 재연된다.

두 거장의 논쟁사를 보면서 우리가 신앙처럼 받드는 경제 이론이란 게 불변의 진실도, 완벽한 것도 아님을 알게 된다. 20세기 전반기와 중반기는 케인스주의 시대였으며, 1980년대 이후엔 시카고학파의 자유지상주의가 세계를 휩쓸었다. 2008년 금융위기와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면서 다시 큰 정부가 힘을 얻고 있다.

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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