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강국창 (9) 고향 태백서 본격 선거 준비… 마음은 이미 국회의원

제12대 국회의원 선거를 엿새 앞둔 1985년 2월 6일 서울 종로·중구 합동연설회에 몰린 인파들. 당시 민정당 공천을 받지 못한 강국창 장로는 국회의원의 꿈을 접어야 했다.


성공에 취해 있을 때 주변의 공격을 받는다. 나 역시 그랬다. 본의 아니게 여러 모임에 참여하면서 지역에서 이름깨나 날리는 이들과 친목을 갖게 됐다. 당시는 전두환 대통령 집권기로 예비 사단의 사단장이 영내 근무를 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사단장을 중심으로 지역 인사들이 모임을 가졌는데, 젊은 기업인으로 사업체를 운영하는 나를 좋게 봤는지 저녁 모임에 자주 불러주곤 했다.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이 대부분 기관장급이었기에 내심 인맥 관리에 성공했다는 우쭐함도 있었다.

“자네가 그렇게 사업을 잘하고 있다면서?” “아, 아닙니다. 그냥 열심히 할 뿐입니다.” “그래, 우리나라도 이런 패기 있는 젊은이들이 일해야 해. 자네, 정당 활동 좀 해보는 게 어때.”

그들은 생각지도 못한 제안을 했다. 민정당이 창당을 준비하고 있으니, 창단준비위원회에 들어오라는 권유였다. 순간, 대학 학우회장 시절 국회의원에게 협조를 구하러 다녔던 기억이 떠올랐다. ‘맞아. 내가 정치인이 되고 싶다는 마음을 가졌던 때가 있었지. 그렇다면 혹시 지금이 그 기회 아닐까.’

아무런 준비도 없는 상태에서 모든 상황을 나 중심으로 끼워 맞추고 있었다. 결국 나는 입당해 당적에 이름을 올린 뒤 막내 당원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열심히 참여했다. 나를 이끌어준 분들과 관계를 맺고 그들의 수발을 들었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이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나를 당으로 이끌어준 분들이 또 한 번 깜짝 제안을 해왔다. 국회의원직을 권한 것이다. 나도 모르게 끌리기 시작했다. 아마 본심 어딘가 권력에 대한 욕심이 있지 않았을까. 번갯불에 콩 볶듯 그렇게 정계 진출이 가시화되었다.

나는 회사에 이 소식을 알리고 추후 대책을 논의했다. 다행히 회계나 재무관리 쪽에 살림을 맡아줄 인력은 있었기에 당장 회사 운영에는 별문제가 없었다. 이미 개발된 부품을 생산하는 시스템도 잘 돌아간다면 큰 문제는 없어 보였다. 무엇보다 이미 나의 머릿속에는 선거가 꽉 들어차 있어서 회사에는 거의 통보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고향인 태백으로 내려가 본격적으로 선거 준비에 들어갔다. 아직 공천을 받기 전이었지만 당시엔 여당 공천만 받으면 당선 확률이 아주 높았다. 또 다들 공천을 보장하고 있었기에 지역 주민들을 만나면서 안면을 터 나갔다.

“국창아, 너 서울 가더니 정말 성공했구나. 그 나이에 벌써 국회의원에 도전하겠다니 참 대단하다. 사업도 성공했다면서?” 고향 친구들은 나를 엄청 부러워했다. 선거운동원이 되어 도와주겠다며 애도 썼다.

아직 예비후보자였지만 누구보다 열심히 뛰어다니며 민심을 파악해 나갔다. 진짜 국회의원이 된 상상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너무 자만했던 것일까. 어느 날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했다. 나를 선거에 나서게 도와준 분이 만나자고 했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공천이 다른 사람에게 넘어갔어.” “네? 공천을 못 받았다고요? 왜요?” “윗선에서 그렇게 결정이 됐어.” 화가 치밀기도 했고 허무하기도 했다. 마음이 너무 상했다.

정리=박재찬 기자 jeep@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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