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서정희 (5) 해피엔딩 꿈꾸던 인생… 시나리오대로 흐르지 않음 깨달아

방송인 서정희 씨가 지난 4월 초 서울 강남세브란스 병원에서 유방암 수술을 위해 각종 검사를 받고 있다. 딸 서동주 제공


올여름 비가 자주 내렸다. 습기가 많은 축축한 날씨는 암환자인 내게 좋지 않다. 비가 올 때마다 통증이 심했다. 겨드랑이부터 허벅지까지 송곳으로 콕콕 찌르는 고통이 밀려왔다. 지독한 아픔에 몸서리쳤다. 외롭고 서러웠다. 그럴 때마다 하나님께 기도하고 찬양하며 고통의 시간을 견뎠다.

유방암 초기임에도 한 쪽 가슴 모두를 절제해야 했다. 암세포가 퍼질 수 있는 문제 부위를 도려낸다고 의사가 설명해 주니 오히려 안심이 됐다. 그러나 지금도 난 없어진 가슴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어색하고 낯설기만 하다. 수 십년 간 있었던 가슴이 갑자기 사라지니 적응이 안 되는 게 솔직한 마음이다. 다행히 방사선 치료까지는 안 해도 된다. 그 점을 빼고 나면 온통 단점 투성이다. ‘건강이 최고’라는 말을 새삼 깨닫는다.

유방암에 걸린 뒤, 괜찮은 척 씩씩하게 생활했다. 하지만 한동안 풀이 죽어 있었다. 암 걸린 사실을 알게 된 일부 지인이 “너는 믿음도 좋은데 왜 그렇게 안 좋은 일만 생기냐”고 대놓고 비야냥거렸다. 그걸 왜 내게 묻는지 울컥 눈물이 났다. 툭툭 내뱉는 타인의 말에 상처를 입었다. 하지만 하나님을 향한 간절한 기도와 찬양으로 이겨낼 수 있었다.

현재 기도제목은 ‘주님, 살게 해 주세요’다. 살게 해달라는 간절한 기도를 하나님은 분명 들어주실 거라고 믿는다. 하나님께 은총을 입은 하나님의 자녀 서정희니까. 출애굽기 33장 13절 “내가 참으로 주의 목전에 은총을 입었사오면”이라는 말씀이 생각난다.

살려고 열심히 기도하고 있다. 그런데 수시로 의지를 꺾는 일들이 벌어지곤 한다. 아등바등 살고 있는데, 황당한 가짜 뉴스가 발생했다. 유튜브에 ‘서정희 병원에서 공식 사망’이라는 영상이 뜬 것이다. 내 영전 사진까지 만들어 유포되고 있었다. 지인들이 깜짝 놀라 전화가 잇따랐다.

살려고 하는 사람을 왜 죽이려는 걸까. 돈 버는 수단치곤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척 마음이 상했다. 누구라도 아프고 병이 생기고 뜻하지 않은 일이 일어날 수 있는 일 아닌가. 왜 그렇게 독하게 말을 하는 걸까.

예전 같으면 분노했겠지만 지금은 ‘오래 살 모양이다’하고 그냥 넘어간다. 그저 주님께 “저는 은총을 입은 사람이지요”라고 하소연하면 그만이다.

해피엔딩을 꿈꿨다. 당연히 내 인생은 해피엔딩일 거라 믿었다. 그 시나리오는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결혼도 이혼도 건강도 뜻대로 되지 않는다. 그러나 괜찮다. 이제라도 인생이 정해 놓은 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으니 그걸로 만족한다.

삶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면서 한 가지 꿈이 생겼다. 다시 시작할 수 없는 사람, 망가진 사람, 헛된 꿈을 가진 바보 등 나 같이 힘든 이들에게 위로와 힘이 되는 친구가 되고 싶다. 상처 받아본 사람이 상처 입은 이들을 더 잘 치유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국민일보 ‘역경의 열매’도 그런 마음으로 시작했다. 누군가에게 용기를 주고 그 용기로 삶의 고통을 뛰어넘기를 바란다.

정리=유영대 종교기획위원 ydyo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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