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 365-10월 8일] 거친 마음, 거친 마을(나사렛)



찬송 : ‘여러 해 동안 주 떠나’ 278장(통 336)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누가복음 4장 28~30절


말씀 : 명절에 고향에 있는 부모님과 마을 어르신들을 찾아가 인사하고 돌아올 때면 잘 성장한 어른이 된 것 같은 뿌듯한 기분이 듭니다. 누구든지 내 고향에서만큼은 인정받고 싶기 때문에 만일 고향에서 환대받고 인정받지 못할 때는 참 비참한 기분이 들겁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어려서부터 자라온 고향 나사렛에서 환대는커녕 배척을 당하고 그도 모자라 낭떠러지에서 밀침을 당하는 수모를 겪었습니다. 사생애를 살 때는 문제가 없었지만 메시아로서 사명 선언을 나사렛 회당에서 하신 후 배척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선지자가 고향에서 환영을 받지 못하는 것을 이미 아셨습니다. 왜 이런 위험을 감수하고도 나사렛 선언을 하셨을까요.

나사렛의 의미는 ‘가지’입니다. 줄기에서 뻗어 나오는 일반적 의미의 가지가 아닌, 잘려나간 그루터기에서 다시 돋아나는 가지, 새싹을 말합니다. 즉 밑동이 잘려나가도 다시 생명은 솟는 가지처럼 가난과 멸시의 변방 땅 나사렛에 새로운 소망과 생명을 선포하고 싶으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을 밀쳐버렸습니다.

나사렛 사람들처럼 예수님을 밀쳐내면 어떤 결과가 일어날까요. 첫째, 아무 일도 안 일어납니다. 나사렛에서는 아무 이적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기대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불신앙의 공간 안에서 역사가 일어날 수 없습니다. 믿음이 있어야 기대가 되고 기대가 돼야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아무 기대와 열정이 없는 곳에서는 예수님도 어떤 권능도 행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조차도 그들이 믿지 않음을 이상히 여겼습니다.(마 6:5~6) 혹시 예수님이 아무 기대와 열정도 없는 우리를 이상히 여기지 않을까요.

둘째, 익숙한 것은 해가 됩니다. 마을 사람들은 예수님을 잘 안다고 생각했습니다. 과부 마리아의 아들, 목수의 아들로 익숙했습니다. 그러나 다 안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히려 해가 됩니다. 우리의 경험과 지식은 언제나 부분적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새로운 일이 일어나고 완전으로 나아갑니다. 바울조차도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알지만 그때는 하나님이 나를 아신 것처럼 내가 완전하게 알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고전 13:12) 혹시 내가 예수님을 다 안다고 착각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셋째, 받을 축복을 다 놓칩니다. 나사렛은 결국 수많은 기적과 권능의 축복을 다른 갈릴리 마을에 놓쳐 버립니다. 그 결과 나사렛에서는 어떤 기적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두로와 시돈같은 이방 땅에 믿음의 이야기가 더 풍성합니다. 결국은 바울조차도 이방 땅을 향해 나가게 됩니다.

절벽산처럼 나사렛 사람들의 마음은 거칠었습니다. 어쩌면 마을 사람들보다 예수님의 마음이 더 거칠게 아팠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만 고난을 겪은 것이 아니라 이미 찔리셨고, 이미 상하셨습니다. 내 마음에 예수님을 무작정 밀쳐내는 거친 마음은 없는지 돌아봅시다.

기도 : 하나님, 아무 기대와 열정이 없는 마음, 다 안다고 착각하는 마음, 예수님을 밀쳐내는 거친 마음을 용서해 주시고 새로운 가지가 나오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주기도문

조순미 목사(인천 올리브나무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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