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유이상 (5) 학비 마련하려 휴학… 다방에 커피 팔다 계란과 인연 시작

유이상(오른쪽) 풍년그린텍 대표가 1976년 국민대 졸업식에서 어머니와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대학 1학년을 마치고 휴학했다. 신문 배달만 해서는 대학 생활을 유지하는 게 너무 힘들었다. 당시 신문을 인쇄하고 타 지역으로 배송하는 부서에도 고창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 인연으로 종종 의정부나 동두천 쪽으로 배송 나가는 차량을 따라다니기도 했다. 그리고 이 지역에는 미군 부대에서 흘러나오는 물건 중 흔히 접할 수 없는 것들이 꽤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나는 미군 PX에서 나오는 커피를 구입해 다방에 되파는 일을 몇 차례 했다. 그러면서 다방이라는 곳에 대해 모르던 사실들을 알게 됐다. 그중 하나가 다방에서 계란을 많이 소비한다는 사실이었다. 오전 10시 전에 오는 손님들에겐 계란 노른자를 넣은 모닝커피를, 낮에는 뜨거운 물에 계란을 넣어 반숙 계란을 팔았다. 문득 신문 배달보다는 계란을 도매로 사다가 다방에 납품하는 게 수익 면에서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계란은 내 인생에 그렇게 처음 들어왔다.

다방 몇 군데를 돌면서 계란을 납품하면 받아 줄 수 있는지 시장조사를 하고, 서대문 영천시장의 계란 도매상에서 계란 공급을 받기로 한 뒤 짐 싣는 자전거를 한 대 사서 계란 장사를 시작했다. 다방에서 음식점으로 계란 납품을 확대해 가면서 수익은 늘어났지만 결국 이것이 계란 장사를 그만두는 계기가 됐다.

그때만 해도 양계가 활성화되지 않아 시골 가정집 닭이 낳은 달걀을 모아 시골 장날에 10개짜리 한 꾸러미를 상인에게 팔고, 그것이 모여 완행열차로 서울로 보내졌다. 생산에서 판매까지 계란 한 줄이 유통되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 셈이다. 그러다 보니 간혹 변질된 계란이 나왔다. 식당에선 썩은 계란이 한 알만 나와도 고객들의 원성이 자자했고 그럴 때마다 납품한 계란 값 일체를 못 받는 일이 생겼다. 계란 장사에 어려움을 겪던 중 솔깃한 제안이 들어왔다. 계란을 납품하던 다방 주인이 종로에서 새로 여관을 하게 됐다며 일을 좀 도와달라는 것이었다.

“학생 같은 든든한 청년이 여관에 딱 버티고 있으면 마음이 얼마나 든든할까. 전등 나가면 바꿔 주고 집안에서 남자들이 처리해주는 잡다한 일을 좀 처리해 주고. 그렇게만 해준다면 옥상에 방 하나 만들어 주고 용돈이랑 학비는 내가 책임질게.”

숙식 용돈 학비가 모두 해결된다니 나로서는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딱히 어려운 일도 아닐 것 같았다. 제안을 수락하고 짐을 꾸려 여관 건물 옥탑방으로 처소를 옮겼다. 그런데 막상 가보니 생각했던 것과는 상황이 전혀 달랐다. 여관엔 상주하면서 매춘을 하는 여성이 서너 명 있었는데, 그들이 옥탑방에 수시로 올라와 마음이 영 불편했다. 하나같이 나를 ‘가지고 놀 남자’ 쯤으로 여기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춘 여성을 찾는 남자 중에는 변태적 취향을 가진 이들도 있어서 아가씨에게 생명의 위협을 가하는 경우도 종종 발생했다. 그때마다 아가씨들은 도망치듯 내 옥탑방으로 올라와 살려달라고 했다. 제대로 공부 좀 해볼 요량으로 이곳을 선택한 게 뼈저리게 후회됐다. “여자를 조심해라.” 어머니 말씀이 뇌리를 스쳤다. 나는 1개월여 만에 말없이 짐을 싸서 그곳을 나왔다.

정리=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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