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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희욱의 슬기로운 금융] 동틀녘이 가장 춥다… 올해는 미국발 고금리 한파 견뎌야 할 때





게티이미지


작년에는 놀랄 만한 일들이 많았다. 경제 쪽에서는 금리 급등이 유별났는데 어지간한 이슈는 금리로 다 설명이 될 정도였다. 철옹성 같던 부동산 불패 신화도 금리 한 방에 나가떨어졌다. 왜 진작에 금리를 올리지 않았던가 하는 후회도 잠시였고, 고금리로 인한 경기 침체 불안감이 산업계를 넘어 일반으로까지 확산됐다. 그러더니 이제는 금리가 떨어질 것이라는 예상이 급속도로 퍼지고 있다. 인플레가 아무리 흉악하다고 해도 이미 정점을 지난 마당에 이렇게 금리를 계속 올리면 경기고 뭐고 다 망하고 만다는 조급함이 금리 인하의 당위성으로 변신한 것이다.

금융 당국은 물가가 아직 안정 궤도에 접어들지 않았다며 금리 인하론을 무시하고 있지만 우리 경제의 취약점인 가계부채에 대한 걱정은 감추지 못했다. 이를 간파한 투자자들은 채권을 매입하며 금리 하락 시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길목을 노리고 있다. 그러나 상황이 무르익을 때를 참고 기다릴 줄도 알아야 한다. 금년은 고금리의 고통을 견뎌내야 하는 시기라는 말이다. 적어도 미국이 금리 정책의 방향을 전환(pivot)하지 않는 한 그 반대의 길을 가는 것은 매우 위험하기 때문이다.

금년 美 금리 떨어지지 않을 것 같다

작년 12월 발표된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 위원들의 금리 예상(점도표)에 비춰 볼 때 정책금리는 금년 중에 0.75% 포인트 정도 인상될 것으로 보인다. 또 지난주에 공개한 당시 회의록에서는 “2023년에 정책금리 인하를 시작하는 게 적절하다고 말한 참석자는 없었다”며 금년에는 금리 인하가 없을 것이라고 못 박았다. 연준은 물가상승세가 둔화되고는 있지만 안정 기조가 정착될 때까지는 시간이 좀 더 걸릴 것으로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미국 인플레는 상품 분야에서 서비스 분야로 넘어가는 중인데, 현재와 같이 완전고용 수준이 지속되는 한(작년 12월 실업률이 50년래 최저치인 3.5%를 기록) 임금 상승 압력이 높기 때문에 인플레가 완전히 진정되기가 쉽지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시장에서도 물가가 쉽사리 떨어질 것으로 예상하지는 않지만, 작년에 연준이 정책금리를 너무 급하게 올리는 바람에 그 부작용이 금년에 발현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투자은행들은 금년도 경제성장률이 작년의 1.8%에서 0.4%로 급락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각종 설문조사에서 미국 경제가 침체에 빠질 확률도 점점 높아지고 있다. 또한 연준에 대한 신뢰마저 거둬들이고 있다. 즉, 2년 전에 연준은 당시 물가상승이 일시적이라며 유동성을 과다 공급하는 잘못을 저질렀는데, 이번에는 경기가 연착륙될 걸로 보고 금리를 지나치게 올리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연준은 조만간 금리를 내릴 수밖에 없어 냉탕과 온탕을 오가는 샤워실의 바보(Fool in the shower room)가 되고 말 것이라고 비웃고 있다.

그러거나 말거나 연준은 이전의 제로 금리가 코로나라는 초유의 상황에서 취해진 이례적인 조치였던 만큼 이의 정상화가 중요하다고 여긴다. 나아가 현 금리 수준도 높은 것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금리는 통상 물가상승률에 경제성장률을 더해서 그 적정 수준을 가늠하는데, 지금 대략 물가 7%에 성장 2%인 점을 감안한다면 정책금리(4.5%)는 아직도 인상 여력이 있는 것으로 본다. 적어도 물가상승률이 목표 수준인 2%대로 복귀할 것이 확실시될 때까지는 금리가 더 올라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고 있다. 경기 침체가 가시화되거나 금융 시스템이 불안해지지 않는다면 연준은 금리 인상 기조를 바꾸지 않을 듯하다.

우리도 고금리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미국의 금리 논쟁을 강 건너 불구경하듯 지켜만 볼 수 없다. 세상이 긴밀하게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 경제는 수출입 등 대외 부문에 많이 의존하고 있기에 세계 경기나 열강의 경제정책에 민감하다. 한국은행 이창용 총재가 말했다시피 우리의 통화정책은 미 연준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미국과 우리의 기준금리 격차는 어느덧 1.25% 포인트까지 벌어졌는데 이것이 더 확대될 경우 우리 경제에 커다란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학계에서는 국내외 금리차를 환율 변동의 주된 요인으로 보고 있는데, 거래비용을 넘어설 정도로 그 격차가 확대된다면 급격한 자본 유출(capital flight)이 발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더군다나 작년도에 우리나라의 수출입 차이는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처음으로 대규모 적자(472억 달러)를 기록했는데, 올해 이것이 쉽게 호전될 것 같지도 않다.

만일 많은 전문가들의 전망과 달리 금년 하반기에 우리나라 주력 수출품인 반도체 가격이 회복되지 않는다면 우리 경제는 매우 어려워질 수도 있다. 그렇다고 금리를 내린다면 자본시장과 국제금융시장에 잘못된 시그널을 줘 안정 기조가 완전히 무너질 가능성도 있다. 이런 점을 감안한다면 우리가 홀로 기준금리를 낮추기는 어렵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기준금리가 하락하지 않는다고 시장금리가 내려가지 말란 법은 없다. 그러나 기준금리가 떠받치고 있는 상황에서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오히려 이제까지의 금리 급등 영향으로 연체와 부도가 늘어나 금융기관들이 손실 보전 차원에서 금리를 더 높일 개연성이 있다. 이렇게 되면 저신용자를 중심으로 금리가 올라가고 그에 따라 연체가 늘어나고, 다시 금리가 오르고 부도가 더욱 느는 악순환에 빠져든다. 너무 힘든 상황이지만 사실 이것이 시장의 구조조정 방식이다. 이렇게 해서 코로나 시기의 값싼 이자와 엄청난 유동성으로 거품이 잔뜩 낀 자산시장과 사업모델이 정리되는 것이다.

미 연준의 점도표에서 보듯 내년에는 금리가 인하될 가능성이 있다. 그렇지만 금리가 인하되기 전까지는 경제가 신음할 것이다. 이 고비를 잘 넘기는 것이 중요하다.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하는데, 할 수만 있다면 생산성 향상과 기술 혁신으로 수익을 늘리고 부채를 줄이는 게 좋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경쟁력을 높인 자는 이후에 펼쳐질 호황기(goldilocks)를 제대로 구가할 것이다.

LUX경제그룹대표·경제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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