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 365-2월 19일] 긍휼



찬송 : ‘자비한 주께서 부르시네’ 531장(통 321)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마태복음 5장 7절


말씀 : 오늘날 사람들이 잃어버린 중요한 가치 중의 하나는 ‘자비’입니다. 자비는 남을 깊이 사랑하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입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똑똑하고 사리 분별이 밝은 이들조차 남을 불쌍히 여기지 않고 살아갑니다. 무관심이나 적개심을 품고 남을 도울 필요가 없다는 식의 자기합리화를 합니다. 타인과 공감하려는 시도를 포기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은 이 사실을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사랑을 받게 된 가장 첫 번째 이유는 그분이 우리를 불쌍히 여겼기 때문입니다.

긍휼은 하나님께 속한 성품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긍휼히 여깁니다. 하나님은 가인에게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아벨의 핏소리를 들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에서 노예 생활을 할 때 이들의 신음을 들었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죄인인 우리의 탄식하는 소리도 듣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고통에 침묵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들었다’는 말은 그분이 우리의 고통에 공감하고 함께 해준다는 의미입니다. 긍휼이라는 영어표현은 컴패션(Compassion)인데 이 말은 ‘함께’라는 뜻의 라틴어 ‘com’과 ‘당하다’ ‘아파하다’란 의미의 ‘pati’란 말에서 왔습니다. 하나님은 고통과 어려움 속에서 신음하는 우리의 모든 소리를 듣습니다. 우리의 형편과 사정을 알뿐만 아니라 함께 아파하고 공감하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죄인의 아픔에 동참하기 위해 몸소 이 땅에 내려왔습니다. 죄인인 우리끼리 알아서 하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인간의 모든 고통과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내려왔습니다. 누구든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그리스도 안에서 인생의 아픔을 씻어버리고 참다운 자유와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의 출발점은 하나님이 우리를 긍휼히 여겼기 때문입니다.

‘긍휼’을 뜻하는 히브리어 ‘라함’은 여인의 자궁을 이르는 단어인 ‘레헴’에서 온 것으로 여겨집니다. 어머니 자궁 안에서 아기는 모든 걸 공급받으며 안전을 누립니다. 어머니는 위대한 모성애로 아이를 보호하고 사랑하고 지켜줍니다.

긍휼은 하나님의 자궁입니다. 태아를 품고 있는 자궁처럼 하나님의 긍휼한 마음이 우리를 감싸고 있습니다. 죄인이었던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과 연결돼 그분의 사랑을 받을 수 있습니까. 우리가 대단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성품 때문입니다. 그분의 끝없는 사랑 덕분입니다. 그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를 감싸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우리는 사랑으로 연결돼 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로 우리를 하나님과 맺어 줬기 때문입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롬 8:35) 엄마와 아기가 모태에서 끊어질 수 없듯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어지지 않습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사람을 긍휼히 여기며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긍휼은 멈추지 않고 여러 곳으로 흘러갑니다. 복을 받은 성도 여러분, 긍휼을 받은 사람으로서 타인을 긍휼히 여기는 자가 됩시다.

기도 : 사랑의 하나님, 긍휼을 받은 자로서 긍휼히 여기는 자가 되게 하소서. 재난과 전쟁으로 고통받고 있는 이웃을 공감하며 사랑을 나누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주기도문

전광병 화천 간동성결교회 목사
 
트위터 페이스북 구글플러스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