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현의 기독문학기행] 너와 나의 아픔 일치시킬 때, 비로소 천국

올해 개원 100주년을 맞은 국립소록도병원 뒤쪽에 설치된 벽화 ‘아름다운 동행-소록도 사람들’의 한 부분이다. 450명의 한센인과 비한센인의 얼굴이 어우러져 새겨진 벽화는 ‘우리들의 천국’이 오고 있는가를 묻는 듯 하다. 1960년대 당시 한센인들 흑백 사진을 합성했다.
 
2009년 개통된 녹동항과 소록도(오른쪽 섬)를 이어주는 소록대교.
 
눈물의 재회 장소 ‘수탄장’(위)과 한하운 시인의 ‘보리피리’ 시비.
 
벽돌공장 굴뚝 자리에 세워진 십자가상.
 
이청준 작가


거센 바닷바람 때문인지 소록도 해변의 나무들은 섬 밖을 향해 깃발처럼 펄럭이고 있었다. 하루빨리 완치돼 가족들에게 돌아가고픈 이들의 애절함을 전해주는 듯했다. 전남 고흥의 끝자락 녹동항에서 600m 떨어져 있는 소록도. 지형이 작은 사슴을 닮았다고 해서 소록도란 예쁜 이름을 가진 이곳은 한때 '사자(死者)의 섬'으로 불렸다.

국립소록도병원이 있는 이곳은 누가 혹시 알아볼까 가족에게도 감염 사실을 숨기고 살아야 했던 한센인들의 아픔이 있는 곳이다. 섬의 면적은 3.68㎢(111만평) 정도로 작지만 깨끗한 자연 환경과 해안 절경, 신비로운 식물 등으로 낙원처럼 평화로워 보였다.

현대 소설문학에 큰 발자취를 남긴 미백(未白) 이청준(1939∼2008)의 대표작 ‘당신들의 천국’(1976)의 배경이 된 소록도를 지난 11일 찾았다. 이청준은 ‘낮은 데로 임하소서’ ‘벌레이야기’ ‘당신들의 천국’ ‘행복원 예수’ 등에서 사랑과 용서, 화해 등 기독교적인 신앙고백을 담아냈다. 인간 구원에 대한 깊은 성찰로 기독교의 본질과 역할을 고민하게 한 작품을 통해 그는 우리나라 기독교 문학을 한층 윤택하게 만들었다는 평을 받고 있다.

수탄장의 눈물- 천국에는 울타리가 없다

군내 버스는 올해 100주년을 맞은 국립소록도병원 앞에 정차했다. 일제가 한센인 관리 목적으로 설립한 자혜의원이 국립소록도병원의 시작이다. 지금은 550여명의 한센인이 거주하고 있지만 한때 수용환자가 6000명이 넘었다.

소록도 해변의 아름다운 경치를 감탄하는 시간은 아주 짧았다.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탄식의 장소로 불렸던 ‘수탄장(愁嘆場)’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소록도는 1950∼70년 직원지대와 병사지대로 나뉘어져 경계선에 철조망이 쳐 있었다. 당시 환우자녀들은 직원지대에 있는 보육소에 격리됐다. 병사지대의 부모와 한 달에 단 한 번 만날 수 있었다. 면회시간은 5분. 자녀와 부모는 도로 양옆으로 도열한 채 눈으로만 안부를 확인했다.

그 길을 전동휠체어를 탄 한 한센인이 건너고 있었다. 그에게 중앙공원을 물었다. 그는 “어디서 왔소?”라고 물었다. 서울에서 왔다고 하니 “멀리서도 오셨네”하며 뒤쪽을 가리키며 쭉 올라가라고 했다. 그는 전동휠체어로 가볍게 직원지대로 내려갔다. 2009년 소록대교 개통 이후 소록도 방문객이 증가해 수탄장 옆으로 잘 정돈된 산책로가 마련돼 있다. 송림이 우거진 그 길을 걸었다.

붉은 생명, 동백꽃- 생명은 평등하다

누군가에겐 지옥 같은 곳이 누군가에겐 천국 같은 곳이 될 수 있을까. 지배자가 피지배자를 위해 만드는 천국은 공동운명과 사랑으로 행해지지 않으면 ‘우리들의 천국’이 아니라 ‘당신들의 천국’에 지나지 않는다. 소설 ‘당신들의 천국’이 말하는 핵심이다. ‘당신들의 천국’은 소록도를 천국으로 만들기 위해 선봉에 서는 조백헌 원장이 원생들과 겪는 갈등과 관계회복 후 만들어가는 천국의 모형을 묘사하고 있다. 진정한 이상향과 삶의 의미를 탐구한 작품이다.

이청준은 소설 속에서 보건과장 이상욱의 말을 빌려 이렇게 말한다. “그것은 한마디로 원장님과 섬사람들의 길이 다르기 때문이었습니다. 원장님이 아무리 섬사람들을 생각하고 섬을 위해 노고를 바치고 계셨다 해도 원장님은 결국 그 섬사람들과 같은 운명을 살 수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까닭에 원장님께서 꾸미고자 하신 섬사람들의 낙토가 원장님과 섬사람들의 공동 천국은 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원장님은 저들의 천국이라 하고 저들은 원장님의 천국이라 말하게 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중략) 그 섬과 원장님 사이의 화해가 불가능했던 것은 처음부터 양쪽 다 각자의 운명을 따로따로 살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인간이 나의 아픔과 너의 아픔을 일치시킬 수 있을 때, 자생적 운명의 뿌리를 함께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천국 건설의 기초가 마련된다는 것을 암시한다.

1916년 초대병원장 일본인 의사 아리카와 도루가 부임한 이래 이곳을 낙원으로 만들어주겠다는 ‘천국 만들기 사업’은 지속됐다. 소설 속 조백헌 원장의 전임자인 일본인 주정수 원장의 모습은 이 병원 4대 원장 일본인 의사 수호(재임기 1933∼42)의 모습과 닮았다. 그는 온갖 강압적인 수단으로 환자들을 동원해 소록도 내 공사를 추진했다. 섬은 천국의 모습을 이뤄갔지만 탈출자들이 속출했다. 환우들이 고된 일과 병세 악화를 견디지 못해 일을 하지 않거나 반항하면 감금실에 갇히고, 출소하면 강제 단종수술(정관수술)을 받았다. 중앙공원엔 붉은 동백꽃이 꽃송이째 뚝뚝 떨어져 꽃 무덤을 이루고 있었다. 오래전 인권이 무시된 단종수술을 받던 이들의 아픔을 기억하게 했다.

또 수호 원장은 환자들로부터 기금을 강제 징수해 자신의 동상을 세웠는데 이날을 기념해 매월 20일을 보은감사일로 지정하고 참배하게 했다. 그는 강제노역 가혹행위 등으로 환자들에게 불만을 사던 중 42년 6월 20일 감사일 행사에서 환자에 의해 살해됐다. 수호 동상이 서 있던 자리엔 현재 미카엘 대천사가 한센균을 박멸하는 모습을 형상화하고 ‘한센병은 낫는다’란 문구가 선명하게 새겨진 구라탑(救癩塔)이 세워졌다.

중앙공원엔 솔송, 오엽송, 황금편백, 향나무 등 관상수 100여종이 자라고 있다. 한하운 시인의 ‘보리피리’ 시비에 누군가 동백꽃 두 송이를 얹어 놓았다. 꽃 도장을 찍은 듯했다. 발길이 십자가상 앞에서 멈췄다. 십자가상이 서 있는 자리는 환우들이 몽당손으로 벽돌을 찍어내던 벽돌공장의 굴뚝자리다. 환우들이 받았던 고통은 버림받고 저주받아서가 아니라, 예수님처럼 우리의 죄를 속죄하기 위해서였다는 것을 말해주는 듯하다.

사랑이 없는 자유-배반을 잉태한다

이청준은 소설에서 믿음이 없는 자유는 싸움과 갈등, 불신과 미움을 가져온다고 말한다. 믿음이 없는 사랑의 실천은 사랑을 행하지 않음만 못하다는 그의 생각은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고전 13:3)는 말씀과 상통한다.

‘당신들의 천국’에서 오마도 간척사업이 실패해 섬을 떠났던 조 원장이 7년 후 섬을 다시 찾는다. 운명을 함께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그는 실패를 다시 확인한다. 그가 다시 섬으로 돌아왔을 땐 지도자가 아니라 섬 주민이었다. 운명을 함께할 믿음이 생겼지만 사랑의 실천적 힘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힘 있는 자가 사랑으로 베풀어야 천국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은 작가가 강조하는 알레고리다. 이는 조 원장의 말을 통해 좀 더 분명해진다.

“서로의 믿음을 구하고 그 믿음 속에 자유나 사랑으로 어떤 일을 행해나가고 있다 해도 그 믿음이나 공동운명 의식은, 그리고 그 자유나 사랑은 어떤 실천적 힘의 질서 속에 자리 잡고 설 때라야 비로소 제 값을 찾아 지니고 그 값을 실현해 나갈 수 있다는 이야깁니다.”

소설은 결말을 열어둔 채 막을 내린다. 간척은 진행 중이고 서미연(건강인)과 윤해원(음성병력자)의 혼인잔치가 벌어지는 것으로 이야기가 마무리된다. 구원이 어디서 오는지는 평생을 열어두고 고민해야 할 문제다.

조 원장이 수년 동안 환우들을 동원해 메워나간 간척지는 5·16 직후 실제로 환우들이 메워낸 바다이다. 봉암반도 풍남반도 오마도를 연결하는 바다를 막아서 간척해 낸 300여만평의 농토가 고흥반도 남쪽으로 펼쳐져 있다. 그러나 완공되기까지 소설처럼 수없는 난관에 부딪혔고 지금은 ‘당신들의 천국’으로 남아 있다.

이청준 생가는 전남 장흥 회진면 진목리 마을회관 바로 뒤에 숨어 있다. ‘눈길’ ‘새가 운들’ ‘연’ ‘빗새 이야기’ ‘서편제’ ‘해변 아리랑’ ‘축제’ 등 많은 작품이 그의 고향과 어머니의 바탕 위에서 탄생했다. 생가에서 무덤이 있는 문학자리, 그리고 임권택 감독의 영화 ‘천년학’ 원작인 소설 ‘선학동 나그네’의 배경 등은 이제 이청준의 궤적을 밟아보는 소설 길로 조성돼 있다.

[이청준처럼 생각하기]
오늘, 우리들에게 천국이란?


천형(天刑)의 땅에 살고 있는 이들에게 ‘천국을 만들어주겠다’고 했던 제안은 이 시대에도 진행 중이다. 정치인들의 선거공략에 빠지지 않는 것이 복지국가 건설이 아닐까.

소설에서 조백헌 원장은 ‘우리들의 천국’을 꿈꿨지만 결국 ‘당신들의 천국’에 그쳤다. 실패한 이유는 첫째 사랑으로 행하지 않은 것, 둘째 공동운명체로 살지 않은 것, 셋째 지배자와 피지배자가 수평적이지 못하고 수직적이기 때문이었다. 자유든 사랑이든 상대에게 깃들 수 없다면 소용없다. 공동운명체란 생각 없이는 상대에게 깃들 수 없다. 즉 운명을 같이하지 못하는 사람들 사이엔 믿음이 생길 수 없다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가 ‘우리들의 천국’이 될 수 있을까. 이청준은 힘의 행사는 사랑과 자유 위에 기초해야 한다고 말한다. 인간의 천국이 다른 인간의 천국과 대립되는 개념이 되어선 안 된다. 자유 없는 힘은 끊임없는 배반을, 사랑 없는 힘은 강요된 의무만 낳는다. 자유와 사랑에 기초한 실천적 힘이야말로 인간사회를 천국으로 만드는 기본 여건인 셈이다.

이청준은 지배자가 존재한다 할지라도 지배자와 피지배자가 수직의 위계질서가 아닌 수평의 평등한 관계여야 한다고 말한다. 결국 모두의 유토피아라는 하나의 공통된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운명을 함께한 공동체를 이상향으로 보았다. 이런 공동 운명은 믿음을 낳고, 믿음은 자유와 사랑을 낳는다. 이는 천국이 구현되는 과정이다. 이청준은 ‘당신들의 천국’이 ‘우리들의 천국’으로 바뀌어 불릴 때를 소망했을 것이다.

고흥=글·사진 이지현 선임기자 jeeh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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