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는 옛날 선비들의 사랑을 듬뿍 받은 꽃이다. 추위와 눈보라를 헤치고 피어 맑고 올곧은 정신을 지닌 덕분이다. ‘매화는 한평생 춥게 살아도 그 향기를 팔지 않는다(梅一生寒不賣香)’는 신흠(申欽)의 칭송이 아깝지 않다. 퇴계 이황은 세상을 떠날 때까지 모두 72제 107수의 매화 시를 쓸 정도로 매화를 아꼈다.
순천은 볼거리와 먹거리로 가득해 사시사철 찾는 이가 끊이질 않지만 요즘 톡톡 터지는 봄꽃 소식과 함께 여행객의 인기를 한 몸에 받는다. 순천의 원도심에서 매화를 즐길 수 있다. 매곡동 탐매마을이다. 매곡동은 조선 중기 학자인 배숙(1516~1589)이 이곳에 홍매를 심고 초당을 지어 그 이름을 ‘매곡당’이라 부른 데서 유래한 이름이다. 매월 5일, 10일 장이 서는 웃장 맞은편이다.
매곡동 탐매마을은 2005년부터 매곡동 주민자치위원회가 ‘홍매골 홍매화 가꾸기 사업’을 시작하면서 탄생했다. 지역 주민들이 약 3000그루의 홍매화를 직접 심고, 마을 미술 프로젝트로 골목길과 담장, 건물 벽 등을 붉은 매화꽃으로 장식했다. 매곡동 매화 구경의 출발은 탐매희망센터다. 1층에 자리한 마을 카페 홍매뜨락에서 차 한잔을 마시고 센터 뒤쪽 탐매정원을 먼저 둘러본다. 계단에 진분홍 매화 그림이 발걸음을 즐겁게 한다. 계단을 오르면 넓은 쉼터에 매화 조형물과 벤치, 매화와 매실을 소재로 한 벽화가 반긴다. 쉬며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포인트다.
도로 건너편에 우람한 홍매화 나무 두 그루가 눈길을 끈다. 몇 해 전 퇴직한 김준선 전 순천대 교수가 3대를 이어 살고 있는 개인 집이다. 집엔 ‘홍매가헌(紅梅佳軒)’이란 현판이 달려 있다. ‘붉은 매화가 아름다운 집’이다. 이 집은 순천시 개방정원으로 지정돼 있다. 마당은 누구나 드나들 수 있도록 열어둔다.
홍매가헌의 매실나무 두 그루는 해마다 일찍 꽃을 피운다. 50여 년 전 김 교수의 아버지가 수령 30년 된 매실나무를 심었다고 하니 수령 80살을 넘겼다. 훤칠한 몸체에 양쪽으로 벌린 가지가 멋스럽다. 등처럼 붉은 꽃을 단 매화나무가 두 팔 벌려 반갑게 맞아 준다. 붉은빛을 띤 꽃잎에는 봄이 내려앉아 있다.
김 전 교수의 집과 탐매정원 사이 도로 양 옆에는 매화가 줄을 잇는다. 매화를 주제로 한 타일벽화도 만들어져 있다. 집마다 걸린 문패에도, 장독대에도, 우편함과 헌옷수거함에도 매화가 만발하다. 홍매화 거리는 순천대학교 후문까지 이어진다. 따사로운 햇살 머금은 매화가 은은한 향기를 봄바람에 실어 나른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그윽한 매화향이 그림자처럼 따라온다.
매곡동에서 오는 4일 탐매축제도 열린다. 해설이 있는 마을 골목길 투어, 홍매화를 소재로 한 쿠키와 인절미 만들기, 홍매화 공예품 전시 등이 준비됐다. 작은 공연과 이벤트도 펼쳐진다.
순천에서 홍매화가 활짝 핀 곳이 또 있다. 왕지동에 2012년 새로 지어진 순천복음교회의 넓은 앞마당이 매화정원이다. 청매, 홍매, 백매는 물론 겹홍매, 능수매까지 10종이 넘는 매화가 정원을 가득 채우고 있다. 수령 100년, 200년 넘은 고매도 눈길을 끈다. 매화를 잘 몰라도 쉽게 구분할 수 있도록 명패를 붙여 놓았다. 동백과 소나무, 산다화 등도 어우러져 있다. 정원에 만들어진 연못도 운치를 더한다. 로마네스크 양식의 교회를 더욱 돋보이게 한다.
도심 보다 늦게 매화꽃 피는 곳은 월등면 계월리 순천향매실마을이다. 약 50년 전에 처음 매화나무를 심기 시작해서 현재 약 25만평에 이르는 드넓은 들판이 매화나무로 가득 차 있다. 이곳 매화는 섬진강 매화가 시들 무렵부터 피기 시작한다. 꽃망울을 터뜨리면 눈이 내린 것처럼 흰 매화로 ‘꽃 사태’가 나는 진풍경을 펼쳐놓는다.
한국의 옛 정취와 어울리는 매화마을은 낙안읍성 민속마을이다. 옛 마을 의 모습을 간직한 초가도, 고샅도, 돌담 주변에 매화가 아름다움을 뽐낸다.
순천=글·사진 남호철 여행선임기자 hc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