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의 현장을 찾아서 <제1편>] "면죄부 대신 가난한 이웃 돕는 게 훨씬 더 가치 있다"

독일 비텐베르크 성(城)교회 전경. 교회는 지금 내년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공사가 한창이다.
 
성교회 정문에 라틴어로 쓰인 루터의 95개조 반박문.
 
바르트부르크 성.






독일 비텐베르크의 성(城)교회. 마르틴 루터가 면죄부 반박문 95개조를 붙인 곳이다. 지금 이 교회는 방문객을 받지 않고 있다. 대신 예배당을 수리하고 옆 공터에 상당한 크기의 부속건물을 증축 중이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위해서다.

현재의 성교회 건물은 19세기에 새로 지어졌다. 교회는 1760년 화재로 전소돼 몇 회에 걸쳐 재건축했고 오늘의 예배당은 1892년 완공됐다. 16세기 당시 종교개혁 현장의 보존이라는 측면에서는 아쉬움이 적지 않다. 그럼에도 고증을 통해 루터가 면죄부 반박문을 붙인 그 역사적 현장은 틀림없다는 사실에 위안을 받는다.

95개조 반박문은 어떤 내용인가

1517년 10월 31일 34세의 무명 수도사 루터는 독일 비텐베르크 성교회 정문에 면죄부 반박문(Ablassthesen) 95개조를 학문적 토론을 위해 붙였다. 루터는 무시무시한 권력을 가진 로마교회의 오류를 대적해 목숨을 걸고 일어섰다. 세계사적 사건으로서 종교개혁은 바로 루터가 중세교회를 향해 던진 하나의 질문과 함께 시작되었다. 이는 루터의 신념과 (로마교회에 대한) 이의가 담긴 것이었다.

로마교회는 중세를 지나면서 이슬람교도의 팔레스타인 점령으로 더 이상 성지순례를 할 수 없게 되자, 성지 탈환을 명목으로 11세기 말 시작된 십자군전쟁으로 지쳐 있었다. 이러한 가운데 면죄부는 십자군전쟁에 필요한 군비 마련을 위해 필히 요구됐다.

로마교회는 이에 대한 신학을 형성해야 했는데, 이른바 ‘공로 신앙’의 정립이었다. 루터가 95개조에서 말하고자 한 것은 ‘사자(死者)의 죄 용서’였다. 그는 죄 사함은 살아 있는 자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라고 교회법을 들어서 반박했다. 또 연옥이란 중세교회의 성직자들이 영적으로 잠들어 있는 사이 뿌려진 가라지라고 비판했다. 루터는 면죄부 대신 차라리 가난한 이웃을 돕는 행위가 훨씬 가치 있다고 말하며(45조), 교회의 진정한 보물은 하나님의 영광과 은혜로 부여된 가장 거룩한 복음이라고(62조) 역설했다. 루터의 면죄부 반박문 95개조는 물질적, 교리적 그리고 신앙적으로 변질된 중세교회를 향해 높이 든 진리의 횃불이었다.

독일교회, 23개조를 발표하다

최근 독일교회(EKD)는 2017년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하면서 킬대학교 교수 요한네스 쉴링을 회장으로 하는 13인 교수의 학문 자문회의를 발족시켰다. 자문회의는 세계 교회를 향해 23가지 관점(Perspektiven fuer das Reformationsjubilaeum 2017)을 천명했다. 이 23개 조항은 루터가 면죄부 반박 95개조를 중세교회를 향해 천명했던 것과 무관하지 않다. 23개조 중 몇 가지를 제시해 그 의미를 생각하려 한다. 독일과 한국이라는 시공간, 상황의 상이성에도 불구하고 독일교회의 외침에 오늘 한국교회가 귀 기울일 수 있을 것이다.

1. 종교개혁은 유럽에서 출발했지만 시대를 가르고 세계를 바꾸는 교회사적 의미뿐 아니라 세계사적 의미를 갖는다.

6. 종교개혁은 교회와 신학에만 근원적 변화를 가져온 것이 아니라 공적이며 사적인 모든 삶, 사회 경제 문화 법 학문 예술의 표현 양식에 새로운 변화를 가져다 줬다.

7. 종교개혁은 신앙 본질이 그 핵심으로서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를 위시해 자아 스스로와의 관계, 함께 살아가는 이웃과 세계와의 관계를 새롭게 규정했다.

8. 종교개혁은 오직 그리스도를 통해 의롭게 된 사람을 그 어떤 중재자 없이 하나님 앞에 서게 했는데, 오직 하나님의 인정을 통해 인간의 정체성과 가치를 부여하게 됐다. 남녀 신분 능력 신앙 업적에 주목하지 않았는데 비로소 크리스천의 자유가 시작됐다.

9. 종교개혁은 교회공동체에서 계급적 지위를 없애고 세례 받은 자의 영적 제사장설을 내세워 역할에 있어 차이만을 인정했다.

10. 루터는 1520년 명저 ‘기독교인의 자유’에서 이웃에 대한 사랑과 사회적 책임을 하나님이 인정한 크리스천의 피할 수 없는 책무로 규명했다. “기독교인은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운 주인이며 그 어느 누구에게도 종속되지 않는다. 기독교인은 모든 것을 섬기는 종이며 모든 사람에게 종속된다.”

12. 종교개혁은 중세교회와 다르게 크리스천에게 성숙으로 나아가기를 요청하며, 대중의 언어로 번역된 성경을 스스로 읽고 해석하며 그 말씀대로 살아가는 책임 있는 사람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며 살도록 불러냈다.

17. 세례 받은 모든 성도를 향한 만인제사장설은 예배 가운데 함께 부르는 찬송도 ‘말씀의 선포’와 같다는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종교개혁이 외친 만인제사장설은 다양한 교회 음악 문화 형성에 기여했는데, 모든 교회 일원이 성악이든 기악이든 각자의 자리에서 예배를 드린 것에서 찾을 수 있다.

18. 종교개혁이 말하는 크리스천 사랑의 자유는 이웃과 공동체를 섬기는 삶으로 이끌어서 병원, 고아원을 비롯한 사회봉사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했다.

19. 종교개혁이 말하는 모든 직업 소명은 제한된 중세교회의 성직자 소명의식을 뛰어넘어 그가 어떤 직업과 일터에서든 하나님을 섬긴다는 영적 수준으로 그 가치를 이끌었다.

22. 현대는 다문화와 다종교로 치닫고 있지만 기독교적 신앙고백의 상이함과 공통성 속에서도 교회가 함께 종교개혁의 정신에 설 때 분명한 힘을 발휘할 것이다.

23. 종교성과 세계관의 다양성을 부인할 수 없는 상황 가운데서도 기독교적 가치는 높아질 수 있다. 하나의 기독교와 더불어 그것을 넘어 문화적으로나 신앙적으로 이미 규명되고 또는 규명할 수 있는 본거지인 종교개혁을 명심해야 한다.

한국교회의 종교개혁을 요청하다

23개조는 종교개혁이 신학과 교회의 영역에서만 의미를 가질 뿐 아니라 삶의 모든 영역에서 다양하게 영향을 미쳤음을 선언한다. 다문화와 다종교로 치닫는 현대이지만 종교개혁 정신에 입각해 기독교적 가치를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23개조에는 종교개혁의 역사적 의미를 증대시키고자 하는 독일인의 자존감이 깔려 있다. 그렇지만 현재 독일교회를 위시한 서구교회가 루터의 종교개혁 정신에 얼마만큼 서 있는지에 대한 성찰은 보이지 않는다. 독일교회를 비롯한 서구교회의 영적 쇠퇴에 대해서도 침묵하고 있다. 또 다른 개혁을 향한 의지는 보이지 않는다. 종교개혁의 정신에 바로 서는 일이 중요하지만 500년이 지난 오늘, 개혁을 향한 요청들에 대해 분명한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반해 한국교회는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하면서 퇴락하는 한국교회에서 다시 종교개혁의 정신이 일어나기를 갈망하고 있다. 그렇지만 16세기 독일 종교개혁이 그 무엇을 구체적으로 가르쳐 주기를 바라는 것보다 한국교회 스스로 그 길을 가야 한다는 암시만 존재할 뿐이다. 500년 전 무명의 수도사가 신진 대학 비텐베르크에서 종교개혁의 길을 외로이 열었듯이, 21세기 한국교회는 그 고유한 상황에서 제2 종교개혁의 길을 걸어가야 한다. ‘이미 개혁된 교회라 할지라도 지금도 개혁되어야 한다’는 종교개혁의 표어를 새겨본다.

글·사진 주도홍 교수 (백석대·역사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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