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의 현장을 찾아서 <제1편>] 루터의 만인제사장설 지금 한국교회에도 큰 울림

독일교회는 10년 전부터 종교개혁 500주년을 준비해왔다. 현재 독일 비텐베르크대 전경과 1502년 건축됐다는 표시를 알리는 머릿돌(오른쪽 위 작은 사진).
 
수도사 루터의 동상.
 
주도홍 교수


종교개혁 500주년을 향한 독일교회의 준비는 참으로 철저하다. 독일교회는 2017년 종교개혁 500주년을 뜻있게 치르기 위해 2008년부터 ‘10년의 축제 2017’을 이미 기획했다. 독일교회는 10년 동안 매년 종교개혁의 날인 10월 31일에 새로운 주제를 선정해 그 의미를 되새기고 있다.

2008년은 루터 500주년의 10년 행사를 시작하는 해였다. 이후 주제들은 ‘종교개혁과 신앙고백’(2009) ‘종교개혁과 교육’(2010) ‘종교개혁과 자유’(2011) ‘종교개혁과 음악’(2012) ‘종교개혁과 관용’(2013) ‘종교개혁과 정치’(2014) ‘종교개혁과 그림, 성경’(2015) ‘종교개혁과 하나의 세계’(2016)이다.

독일교회가 이렇게 10년 전부터 광범위하게 기념하려는 것은 종교개혁이 교회와 신앙뿐 아니라 정치 학문 예술 문화 그리고 사회적 삶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한 예로 ‘종교개혁과 하나의 세계’를 주제로 내세운 올해는 환경·평화·사회 문제를 주제로 책을 출판하고 여러 행사를 개최하며 특강과 토론회를 열었다. 이는 모두 종교개혁 정신에 기반을 두고 있다.

2014년 독일교회가 내세웠던 ‘종교개혁과 정치’라는 주제도 종교개혁 관점에서 정치를 연관시켰다. 이에 반해 한국교회는 정치에 대해 어리숙한 정교분리를 내세우며 아예 다른 영역으로 치부한다거나, 자신이 지지하는 특정 정당의 편들기에만 급급하다. 안타깝게도 한국교회는 신자가 정관계 고위직에 오르면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다고 불러 자랑하거나 간증집회를 하며 특정인을 높이는 수준이 고작이다. 그 신자가 어떻게 기독교의 진리로 세상에 소금과 빛을 구현해 냈는지는 관심이 없다.

종교개혁과 정치

루터는 종교개혁이 일어난 지 3년 정도 되었을 때 분량이 많지 않은 3대 명저를 차례로 세상에 내놓았다. 3대 저술은 종교개혁이 무엇을 말하려는 것인지를 처음으로 보여주었다. 1520년 8월 ‘독일 귀족에게 고함’, 10월 ‘교회의 바벨론 포로’, 11월 ‘기독교인의 자유’라는 글을 각각 펴냈다. ‘독일 귀족에게 고함’은 교회는 말할 것도 없고, 대학 정치 그리고 사회 전반에 관한 포괄적 개혁프로그램을 제시하는 내용이다. 여기서 루터가 제시한 신학적 근거는 예수 믿고 세례 받은 모든 크리스천들은 목회자뿐 아니라 각자가 부름 받은 직업 현장에서 왕 같은 제사장으로서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16세기 당시의 독일 상황이 교회와 세상을 구별하기가 쉽지 않더라도 루터가 말하고자 하는 만인제사장설은 21세기 한국교회에도 충분히 유효하다. 옥스퍼드대 역사신학 교수 알리스터 맥그라스는 루터의 종교개혁은 ‘그 위험한 사상의 역사’였다고 말했다. 종교개혁의 위험성은 로마교황청이 가졌던 성경해석의 독점 권한을 이전과는 다르게 모든 성도들에게 부여한 것이었다. 그 근거는 베드로전서 2장 9절, 왕 같은 제사장이다. 이 두 가지 사상은 종교개혁의 핵심사상으로 이후 대두되는 다양한 신학과 교파는 어쩔 수 없는 열매로 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2014년 독일교회의 종교개혁 500주년 7년째 잔치였던 ‘종교개혁과 정치’를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당시 독일교회의 대표회장 니콜라우스 슈나이더 박사는 이 주제와 관련, 종교개혁이 16세기의 역사로만 인식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21세기 정치가 무엇을 말하는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했다.

종교개혁자들은 당시 정치권력과 교회의 관계, 그리고 각자의 과업이 무엇인가를 규명하기를 원했을 뿐 아니라 근원적으로 이를 새롭게 하기를 원했다. 그래서 교육을 국가의 과업으로 규명하려 했으며 여성의 법적 지위를 성경에 근거해 새롭게 규정했다.

1934년 5월 31일 독일교회 139명의 총대들은 부퍼탈 바르멘에 모여 서슬 퍼런 히틀러의 절대 권력에 맞서 ‘바르멘 신학선언’을 내놓았다. 이는 종교개혁 정신에 근거한 것으로 교회는 결코 국가의 한 기관이 될 수 없으며 국가는 인간 생명을 규정하는 유일한 제도가 될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독일교회는 국가와 시민사회 속에서 긴밀한 관계를 가지면서 분명한 공헌을 해야 한다고 했다. 교회가 잘못된 정치를 방관한 채 정교분리라는 이름으로 합리화해서는 안 된다는 선언이었다.

한국교회는 무엇을 배울 수 있나

2014년 독일교회에서 공식적으로 내놓은 책자에는 종교개혁, 권력 그리고 정치를 구분해 주제를 다뤘다.

그 중 몇 가지를 소개하면

첫째, ‘국가와 교회의 관계’이다. 교회와 국가는 하나가 될 수 없다.

둘째, ‘누가 가난한 자를 돌보아야 하는가’이다. 지금까지 개신교는 경제를 생각했고, 가톨릭교회는 사회문제에 집중했지만 이것이 과연 옳은 것인지를 돌아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 ‘종교개혁과 헌법’에 대해 다루었다. 현대법의 시작으로서 종교개혁은 12가지 면에서 헌법의 근간을 구축했다.

넷째, ‘종교개혁과 양심의 자유 및 관용의 문제’이다. 종교개혁이야말로 양심의 자유와 관용의 원천으로서, 신앙이란 복음을 통해 오직 성령이 역사하는 내적인 일이다. 양심이란 그 어떤 인간으로부터든지, 교회로부터든지 그리고 권력으로부터든지 자유하다.

다섯째, ‘공적 영역에서 교회의 역할’이다. 교회는 공적 종교로서 분명한 정체성을 갖고 정치와 사회 속에 있는 세상을 함께 이루어가야 한다. 특히 난민과 이민자를 위해 변호인을 자처해야 한다.

여섯째, 교회는 ‘화해자의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평화의 사도로 부름 받은 교회는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전쟁과 갈등의 땅에서 평화를 일구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일곱째, ‘세계 도처에서 박해받는 기독교인을 위한 일’이다. 그들의 아픔에 동참하며 그들을 도와주고 그들이 하루 빨리 고통에서 벗어나도록 기도해야 한다.

여덟째, ‘종교개혁과 환경의 문제’이다. 세상은 하나님의 위대한 작품이다. 원자폭탄과 공해가 망가뜨리는 지구가 되어선 안 된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사람은 창조 질서를 보존하며 살아가야 할 책무를 가진다.

네덜란드의 개혁가 아브라함 카이퍼는 “우리는 한 치의 땅도 하나님의 통치를 벗어날 수 없다”고 말했다. 한국교회에서 정치는 하나님의 영역을 벗어나 있는 것처럼 생각할 때가 적지 않다. 독일교회는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해 복음을 삶의 모든 영역에 구체화시키려고 애쓰고 있다. 종교개혁의 정신을 제대로 파악해 이를 적용하려고 몸부림치는 것이다. 그 결과는 21세기 독일이 세계에서 가장 멋진 나라로 부상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점은 독일 탐방을 통해 분명히 목도한 바다. 종교개혁은 교회사적 사건일 뿐 아니라 세계사적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글·사진=주도홍 교수(백석대·역사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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